와 오래 함께 하고 싶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바삐 움직이는 와이퍼를 보니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아침부터 종종 거리는 내 모습 같아서 애처롭게 느껴진다.
비 오는 날 운전하는 것이 싫었는데 삶의 무게 앞에서는 어떤 것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다. 출․퇴근 시간의 복잡함도 익숙해져 간다. 한 자리에서 신호를 세 번 정도 받으니 이제는 조금 더 일찍 움직이게 되고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이제 곧 백수가 될 예정이다. 두 달 정도 공부를 할 시간이 생긴다.
6월 말을 기점으로 가을, 겨울, 봄의 작기가 끝이 난다.
여름 작기로 쥬키니 호박을 시작했던 남편은 패배를 선언했다. 호박 가시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도와주지도 못해 오이고추에만 주력을 하고 있었다. 여름에 호박류를 재배한다는 것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자 뜨거운 열기에 수정도 잘 안되고 과피에 열 손상이 나타 난다. 고르 크는 것도 힘들어 곤봉 모양이 되고 상품성 가치가 없어진다. 바이러스에 취약 한 걸 알면서도 연구를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농업마이스터를 준비하면서 논문은 어떤 주재로 할지 고민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요즘 전화를 많이 받는데 대부분 토양에 대한 고민들이다. 오랜 기간 동안 농사를 지은 사람들은 자기만의 고집이 있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개선점과 방안을 제시해도 과거의 영광에 취해 다시금 그때의 방식을 고수하다 울며 겨자 먹기 같은 심정이 되어야만 시도를 한다.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여러 방식을 시도하여 개선하면 좀 더 좋은 품질의 농산물이 될 수 있다.
올해 오이고추 농사는 3년간의 실패와 원인 분석의 결과로 물량도 많았고 값도 잘 받은 편이다.
남편의 우스개 소리로 "가져다 놓은 박스 다 어쨌노?"라는 말에 "돈으로 다 바꿔 먹었지."라는 답을 하며 맘 편하게 웃을 수 있었다. 작년만 해도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고 앉아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요일에 겨우 고추를 다따는 바람에 당일에 아버지 생신 기념 나들이를 다녀왔다.
엄마께 미리 언질을 해드리고 아버지께 말씀드려 달라고 부탁드렸다. 아버지는 장시간의 외출을 힘들어하셨다. 1년 가까이 죽만 겨우 드시고 누워 계셔서 야위어 가는 아버지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고 코로나로 사람들과 단절된 시간을 보내시는 동안 우울증이 오시기도 했다.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분이 셨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반촌이 되면서 인구 유입이 많아졌다. 아버지의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오토바이를 고물 상에 직접 팔아 버리면서 세상과 단절하는 기분이 들어서 더 힘들어하셨다.
가끔 고모가 아버지께 전화를 하시는데 밥 맛이 나는 약이 있다고 약국에서 사 먹으라고 했다며 밑져야 본적이다라는 생각으로 사 드셨다고 했다.
정말 약의 효과가 있는 건지 플라세보 효과였는지 아버지의 입맛이 조금씩 돌아오고 함께 모여 식사하는 시간이 다시 즐거워졌다. 가끔 맛있는 디저트를 사서 가기도 하고 자주 드려다 보기도 했다.
먹고살기 바빠서 돌아보지 못했던 시간들이 참 죄송해서 아버지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버지께 정신과에 가보자고 말씀을 드렸을 때 좋은 표정은 아니셨다. 이 시간을 견뎌 내야 함께 할 시간이 많아진다. " 죽으면 고만이지"라는 마음에 없는 말로 회피하셨서 나는 마음을 담아서 말씀을 드렸다.
"이제 겨우 부모를 챙길 나이가 되었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요. 아빠 오래 함께 해주세요. 정신과는 동네 병원 가듯이, 감기 걸려서 병원에 가듯이 가면 돼요. 우울한 마음은 지친 마음에 오는 감기 같은 거예요. 그동안 아빠가 너무 열심히 사셔서 이제 쉬라는 신호 일거예요. 같이 병원에 가요."
말없이 일어나 옷을 챙겨 입으시고 함께 병원을 다녀왔던 날 나는 집에 돌아와 밤 새 울었다.
재활 훈련처럼 운동을 꾸준히 하신 덕분에 이제는 걷는 것도 안정되고 여행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40년 넘게 해 오신 농사를 갑작스럽게 그만두게 되시면서 더 마음이 힘드셨을 것이다.
마음은 흔한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답답할 실 것 같아 외식 후 농장에 모셔와서 구경도 시켜 드리곤 한다.
남편이 말하기를 "장인어른은 당신 말만 잘 들으시는 것 같아. 참 희한해"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외출을 잘하지 않으려고 하셔서 잠깐만 나가서 구경하고 오자고 금방 갔다 온다며 어린 아이를 다루듯 모시고 나온다.
막상 나오면 익숙한 길에 대한 옛이야기와 기억 회상을 하시며 즐거워 보신다.
이야기에 호응을 해드리며 이야기를 잘 들어 드리려고 노력을 한다. 엄마는 옛날 회상이 싫다고 하셨다.
너무 힘들었다며 지금이 좋다고. 아버지는 가장의 무게는 무겁지만 힘이 있었던 과거가 그리우신 것 같다.
아버지 생신 때마다 오게 되는 그레이스 정원 3년째 왔다. 그때 왔던 곳이 아니냐고 물으시는 아버지.
맞다고 말씀드리고 올해는 윤달이 끼어 아버지 생신이 빨라서 수국이 덜 피었다.
해를 더 해갈 수록 숲은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사위 둘은 평일이라 바빠서 못 왔지만 네 명 가족 완전체가 모여 과거의 기억을 떠 올렸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자장면을 먹으러 갔었는데 이제는 그 아이들이 자라서 딸들의 차를 타고 구경도 하러 다니고 밥도 사드린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아빠 나오니까 좋죠?" 아무 말씀은 안 하시지만 행복해 보이신다.
오랜만에 넷이서 사진도 찍고 아버지께 동생은 손 하트도 가르쳐 드렸다. 자꾸 연습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포즈도 해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점심으로 샤브샤브를 먹으러 갔는데 입맛에 맞으실까 걱정을 했지만 아버지는 고기위주로 먹어야 한다며 야채를 옆으로 치우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다.
후식으로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섰다.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와 동생이 부모님을 모셔다 드린다고 했다. 차를 세워 놓은 곳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고맙다 조심해서 가라"라고 말씀하셨다.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었다.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아버지
야위어진 당신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무뚝뚝하셨지만 늘 사랑을 담아 보내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습니다. 늘 곁에 있어 주세요.
사랑합니다.』
오늘도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부족한 제 글을 읽어 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
생업에 치이고 공부 할 것이 많아 수요일, 일요일로 연재를 변경 하였습니다.
꾸준히 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