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내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 순간은 별 다른 게 아니라 평범한 하루 속에서였다.
늘 그렇듯 눈을 떴고, 평소처럼 컵을 들었다. 유난히 묵직한 그 컵. 적당한 온도의 물을 담고 한 모금 마셨을 때. 부엌 싱크대 위 작은 창문이 눈에 담겼다. 빨래집게가 걸린 줄 사이, 회색빛 하늘이 주렁주렁 걸려있었고. 그 사이로 비친 내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엔 잠시 밖을 나섰다.
습관처럼 왼쪽으로 향하던 발을 어디서부터 오른쪽으로 꺾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익숙한 것들 위에 아주 얇은 투명막이 생긴 것 같았다. 닿지 못하게, 흐릿하게.
같은 노래를 듣고도 가사가 조금 덜 들어왔고, 왼편 골목엔 오래된 건물의 창문 하나가 마치 준비된 장면처럼 빛을 받으며 열려 있었다. 빛을 따라간 시선 끝에 작은 웅덩이에는 어제 내린 비가 마르지 못해 고여있었고, 그 물은 햇빛을 품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나를 다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손에 쥐고 있었던 마음들이 이제는 주머니 속에서 흘러내리는 느낌.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누가 나를 민 것도 아니고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된 것 하나가 천천히 등을 돌린 것 같았다.
이유 없이 멀어진 사람, 놓아버린 말.
더 이상 묻지 않게 된 질문들이 서서히 늘어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후에야 알게 됐다.
그 조용했던 그 순간이 내가 알고 있던 나를 떠나는 길목이었단 걸. 정해졌던 방향들이 하나씩 바뀌기 시작했다. 물컵을 내려놓는 방식, 책상 위에 쌓이는 종이의 순서, 조금씩 달라지는 시선의 각도. 나는 어느새 내가 알던 나를 지나쳐 다른 쪽으로 걷고 있었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 한 자리에 서 있었는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같은 마음을 지키고 있었는지.
그날 이후로 나는 미끄러지듯 걸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그 아래엔 지도에 없는 길이 조용히 생겨났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있던 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됐다. 어느 틈엔가 방향은 달라졌고, 내가 지나온 길은 그렇게 조금씩 나를 벗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