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툭하면 펑하고
어떤 꿈에서는 계단을 올랐는데, 위로 갈수록 계단이 점점 투명해졌다. 나는 계속 걸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계단 위를, 마치 발끝이 기억하는 것처럼.
어떤 꿈에서는 오래전에 잃어버린 사람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곁을 지나쳤다. 이름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가 소중했다는 걸 알았다.
어떤 꿈에서는 새벽이 올 때마다 하늘에 주름이 잡혔다. 주름을 따라 불빛이 터졌고, 나는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이번에도 꿈 속이었다.
처음에는 땅이 보였는데 발을 딛는 순간, 땅이 비누 거품처럼 부풀어 올랐다. 나는 바닥을 잃고, 둥둥 떠 올랐다. 공중에는 비눗방울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집, 부서진 시계, 익숙한 얼굴들이 떠있었다. 모두 아주 조용히 회전하고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에 들어가 있었다. 나를 담은 비눗방울은 빛이 닿을 때마다 표면이 얇게 흔들렸고, 그 순간 비눗방울 안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안쪽에서 바깥을 향해 부는 바람.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하얀 냄새 같았다. 어릴 때 본 비눗방울 놀이 같기도 하고, 어디서 본 적 있는 장면 같기도 했다.
멀리서 아빠가 보였다.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별들이 흘러내렸다. 나도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빠는 웃었다. 하지만 얼굴이 점점 물처럼 번졌다. 웃음이 퍼지고, 경계가 무너졌다. 아빠는 조금씩 투명해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말 대신 거품이 터졌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구부러진 빛 사이로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앉았다.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출렁였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비누 냄새가, 꿈속처럼 방 안에 퍼져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깜빡일 때마다 비눗방울이 터 지듯 꿈의 잔해가 조용히 부서졌다.
세탁기 소리는 여전히 일정했고 비누 냄새는 여전히 방 안에 떠 있었다. 이불 끝자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조금씩 안심했다.
꿈이었구나, 정말 꿈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