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 안 될까>에서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이야기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했는데, 결국 냉소적이고 우울한 어른이 되었다가, 판타지 작품들을 읽으면서 다시 창작의 꿈을 꾸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와 글쓰기/소설 쓰기 사이의 오랜 관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초등학생 때의 나는 일기는 꾸준히 잘 써서 제출하는 아이였고, 역사논술 학원 같은 것도 다녔다. 그 때도 글쓰기를 많이 했었다. 역사 배우는 게 재미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역사가 좋아서 뭘 열심히 했다기보다는 칭찬 받는 게 좋아서 열심히 했다는 게 더 정확한 동기였다.그래서 초등학생 때 글쓰기의 동기는 칭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어서 글쓰기를 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그건 중학생 때부터였다. 중학생 때부터는 반에서 일기를 걷지 않으니까 일기 쓰기의 자율성은 내게 넘어왔는데,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감정을 털어놓은 방식으로 일기를 썼었다. 그래서 일기의 내용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슬픔과 불안과 우울로 가득 찬 상태였다. 중학생 아이는 세상의 모든 혼란이란 혼란은 다 겪고 있었다.
최초로 소설 비슷한 걸 쓰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 2차 창작 소설, 즉 팬픽을 쓰면서부터였다. 그때 광적으로 좋아했던 판타지 소설의 팬카페에 가입해서 만약 인물과 인물이 이렇게 만났다면? 이렇게 가정하고 상상해서 글을 썼었다. 사실 만화를 그리고 싶었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그 수준까지는 연습이 한참 필요했고 그 과정이 당장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했던 내게는 투자 시간 대비 비효율적이었다.
나도 진득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당장 내일 있는 학교, 방과후, 학원의 숙제를 하기도 빠듯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시간이 항상 없었다. 그래서 글을 선택했다. 글은 화려하게 시선을 뺏지는 못하지만 문장으로 얼마든지 상상하게 할 수 있고, 내가 묘사하고자 하는 것을 그림보다 빠른 시간 내로 표현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음 속에 계속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고 생산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 있었는데 대학교에 갈 준비 - 입시 공부 국영수 플러스 알파 - 를 해야 때문에 그것에 쓸 시간이 없었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나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부 이외에 이것 저것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었으나, 창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막을 수 없었다. 창작 노트를 하나 정했다. 늦은 밤 노래를 들으면 스토리를 구상할 때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숙제 할 시간을 미뤄 가며 했다. 어떤 세상인지, 주인공이 특정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 어떤 구도를 보고 싶은지 자유롭게 써 내려갔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때까지 본 적 없는 세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본 적 없는 세계에서도 주인공이 결국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걸 보고 싶었다. 세계관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공부를 요구했다. 궁금한 것은 많은데 그것에 대해 조사할 시간은 부족했다. 다시 공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갔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기력과, 평균적이지 않은 성격의 학생으로 학교에서 지내는 고통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다시 일기에 적혔다.
수능 성적은 평소에 모의고사 보던 실력보다 더 낮게 나왔다. 그렇지만 소위 말하는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하지 않았다. 재수하는 그 일 년 동안 나는 내/외부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터져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고등학생 때 그런 스트레스로 자기를 파괴하는 학생들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보고 들었다. 무기력하고 냉소적이고 영악한 아이들이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자란다!
위와 같은 단계를 거쳐 현재의 평안한 상태까지 오는 데에는 이전 게시물<예민한 내향인>에서도 말했듯이, 많은 노력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때의 불안으로 가득 찬 상태를 "썩은내 나는 시간"이라고 비유하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외부로 인한 스트레스, 그걸 해결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무기력. 그건 썩은 냄새를 맡았을 때 일그러지는 표정과 같은 표정을 짓게 하는 기억이다. 그래도 타인의 순수한 친절과 호의,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으려는 노력, 그간 읽었던 책들 덕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올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