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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Nov 27. 2024

찬란한 연애사에 종지부를 찍다

내 마음에도 가시가 박혔으므로


내 외모는 평범하다. 눈에 띌 만한 포인트가 전혀 없어서 카멜레온이 옷 갈아입듯 어디 가든 조용히 묻혀 버린다. 하지만 이런 외모에 비해 20대 중반까지 내 연애는 화려했다. 쉴 틈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이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 고등학교를 지나 재수할 때까지만 해도 내 뇌는 순진무구하게 유지되었으며, 타고나길 고지식해서 남자 사람을 만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만약 의지가 있었더라도 통통하게 오른 살과 꾸밀 줄 모르는 외모로는 애초에 연애를 하기란 어려웠을 거다. 남녀 합반 고등학교를 다녔고, 방과 후 미술학원에서 남자아이들이랑도 잘 어울렸지만, 순정만화책에나 나오는 심장 쫄깃한 연애스토리는 잘 나가는 몇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다. 날라리거나, 겁나 이쁘거나. 나는 그런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인공의 친구도, 주인공 그룹에 속하는 캐릭터도 아니다. 배경으로 뒷모습이나 삽입되는 그런 조용한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20대에는 어쩌다가 끊임없이 남자를 만났을까?


우선 대학을 가니 살이 빠졌다. 아주 쭉 빠졌다. 그 당시 엄마의 목표가 '딸 48kg 만들기'였고, 반듯하게 누우면 골반 뼈가 툭 튀어나와서 징그러울 정도였다. (다이어트 좀 해보겠다고 연재까지 하는 지금의 나도 이 때는 뼈의 존재가 이렇게나 잘 보였다) 살이 빠졌을 뿐 나는 여전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좀 생긴 게 그렇다. 순하고 만만하게. 그래서 미팅에 나가도 남자아이들의 눈이 몰리는 미녀의 '친구 2'에 불과했지만, 신기하게도 남자가 계속 꼬였다. 미팅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미팅 이후에 남자친구가 생기는 건 나뿐이었다. 고대 럭비부 아이들과 미팅을 했을 때는, 190이 넘는 그 무리 중 하나와 인연을 이어갔다. 이대 앞으로 그 무리가 한꺼번에 몰려올 때는 그 사이에 묻혀있는 157센티의 조막만 한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내가 딱 질색하는 나이트에 끌려간 날도 그랬다. 헌팅이니 뭐니 하지도 않았다. 태생적으로 시끄러운 곳을 질색하니 괴로울 뿐이었다. 정신수양이라도 하듯 테이블에 가만 앉아있었을 뿐인데 웨이터 손에 이끌려 한 남자아이가 옆에 앉혀졌다. 그 또한 인연이 되었다. 마침 나는 이대 앞에 살았고, 그 아이는 연대에 다니고 있었다. 남자친구보다는 친구 쪽에 가깝던 그 아이는 나와 신나게 놀았던 죄로 학고를 맞고 말았다. 나는 누구를 만나도 성적에 지장을 받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훗날 방학마다 학교를 다녀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첫사랑을 겪은 셈이다. (내가 첫 여자친구였고,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찾아온다)
아이러브스쿨 붐이 일었을 때는 어릴 때 죽자 사자 싸웠던 악동 같은 아이를 다시 마주쳤다. 동네가 겹치는 덕에 운전면허학원을 같이 다녔고, 끊임없이 구애를 했다. 나는 이미 만나던 친구가 있었지만 이 아이는 용감하게 무찌른다. 요즘말로 하면 환승이별인 셈이다.
그 밖에도 이제는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남자아이들과 남자친구 여자친구 놀이를 하며 대학시절을 찬란하게 보냈다. 그래서 나는 연애가 쉬웠고, 어떻게 하면 남자들이 좋아하는지 본능적으로 터득했던 것 같다. 기어이 기고만장 해져서는 모든 남자들이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자신감으로 내면이 꽉 채워졌다.

그중 다정한 한 아이는 '배고프다'는 한 마디에 집 앞에 온갖 것을 가져다 놓기도 했는데, 그 아이에게는 세심한 배려였겠지만 '내 허락도 없이 내 영역을 침범'하는 그 행동을 나는 질색했다. 걸어가는 내내 햇빛을 손바닥으로 가려주는 아이도 있었고, 오랜 시간 쓴 소중한 일기장을 주고 간 친구도 있었다. 모두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니,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이래라저래라 잔소리 듣기도 싫어하고, 본능적으로 질척거리는 것도 싫어했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걸 선호한다. 그 선을 지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이별을 고했다. 여자친구 놀이가 재미없어져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드라마에서 싸가지없는 여자가 말하듯 '그만 보자'며 돌아섰다. 하지만 내 이별 통보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상처가 될 터였다. 그래서 그 사건이 터졌다.


A에게 이별을 고하고 얼마가 지났을까. 부모님이 지방에 가시고 없던 날, A는 내가 살던 아파트로 찾아온다. '딩동'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소리만 듣고도 어쩐지 A일 것 같았다. 인터폰을 켜면 밖에서 알 것 같아서 살금살금 걸어가 현관문구멍을 가만 들여다봤다.  그때 나오라는 목소리가 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열어주지 않았다. 아무도 집에 없는데 덜컥 열어줄 수는 없었다. 전 여자친구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15층과 14층 사이를 잇는 계단 창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안 나오면 뛰어내릴 거야" 문자가 찍혔다. 순간 겁이 났지만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쇼하는 건가 싶다가도,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하지?' 아파트 입구 쪽에 피가 난자한 시신과, 경찰서에 앉아 진술하고 있는 내가 그려졌다. 죽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나는 101동 입구를 더 이상 드나들 수도 없을 거고, A가 귀신이 되어 나를 졸졸 따라다닐 수도 있었다.
근처 공중전화부스 옆 벤치에 가있으라고 문자를 남겼다. 무슨 사달이 나도 101동 입구여서는 안 되니까. 그 아이가 여기서 벗어나길 바랐다. 내 영역 밖으로.

그날, A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돌릴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이나 지났을까. 다시 문자가 찍힌다. 누가 봐도 마지막을 고하는 문자였다. 바로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는다. 그 아이 집에 다급히 전화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일단 사람은 살려야 했다. 택시를 잡아탔다. 2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제발 죽지 않기를 바랐다. 살아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집에 들어가 보니 다른 방에서 그 아이 엄마가 누운 채로 잠들어 있었다. 전화선은 뽑힌 채였다. 그 친구 방으로 달려갔다. 작은 방 한쪽에 놓인 침대에 아이가 누워 있었다.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로. 급히 걷어낸 이불 아래 피가 흥건했다. 그래도 나는 이 정도로는 죽지 않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자신 없이 그은 손목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이미 피가 멈춘 상태였다. 생사를 확인했고, 그 친구의 엄마에게 알린 것으로 내 할 일을 다했다 싶었다. 더 이상은 엮이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로 찾아온 날 "꼭 행복해라, 네가 가장 행복할 때 너 죽이러 갈 거니까"라고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 길로 그 집을 빠져나왔다. 무슨 일인가 눈치를 살피던 슈나우저가 따라 나온다. 마트에 가서 비엔나소시지 10개를 샀다. 어느 골목 계단에 앉으니 슈나우저가 엉덩이를 붙인 채 가만 쳐다본다. 소시지 하나를 까서 손바닥에 올렸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남은 9개를 몽땅 깠다. 손바닥에 놓인 소시지가 하나씩 없어지는 동안 A와 친구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로 몇 년을 지내면서도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은 몰랐다. 우리 집 컴퓨터가 고장 나면 바로 달려와주던 아이 었고, 늘 차분하고 예의 발랐으며, 모두에게 다정했던 아이였다. 화를 내는 걸 본 적도 없다. 한방 중에 전화로 배가 고프다고 하면 30여쯤 뒤에 '문 앞에 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간 것도 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소시지 10개가 사라지는 동안 이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너무 큰 상처를 주었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나우저에게 '잘 있어'라고 말했다. A에게 말한 건지, 슈나우저에게 말한 건지, 내 지나간 연애사에 이별을 고한건지 모르겠다. 다일수도 있고.
더 이상 연애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질릴 대로 질렸고, 내가 그간 가볍게 생각했던 인연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기가 무서워졌다. 그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웃다가도 곧 멈췄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그 아이가 나를 죽이러 올 만큼이었을까? 생각하면서. 이 사건은 굵은 가시가 되어 나를 끊임없이 찔러댔다.


몇 년이 지나 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다짜고짜 소개팅을 하라는 친구의 말은 통보에 가까웠다. 친구 마음대로 넘겨진 내 전화번호는 한 남자에게 전달되었고, 그날 저녁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장차 CEO가 될 한 남자로부터. 아직 상처가 채 가시기 전, 2006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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