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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다 Oct 12. 2023

그래, 이런 날은 때려치우고 싶더라

기상천외 민원 세상

민원의 사전적 의미는

주민이 행정 기관에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사전적 의미를 한참 벗어난 민원들이 많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직업,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전화로 만난다. (가끔 대면도 한다)


: "성함과 주민번호 부탁드립니다~"

민원: "뒷자리까지 왜 불러야 해요?"

(조회가 안되거든요.. 이름과 생년월일로 조회된다면

개인정보가 아주 쉽게 노출될 테니)



나: "본인이 아니면 상담이 어렵습니다"

민원: "나 믿고 해 주면 돼."

(믿었다가 잘못되면 법정까지 가야 되는데요..)


나: "이 부분은 처리가 어렵습니다."

민원: "왜 안되는데? 근거를 내놔봐!"

나: "법 조항을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민원: "법 말고 근거를 대라고!!"

(그 법이 근거라서....)


민원 1: "와이프한테 안내 안 하는 거 맞죠?"

나: "네. 본인 확인 없이 안내하지 않습니다."

잠시 후

민원 2: "그 인간 방금 전화해서 뭐라 하던가요?"

나: "......"


민원: "잘 먹고 잘 사니까 고충을 모르는 거 아니야!!"

나: "월급 선생님보다 적습니다"

"뚜뚜뚜..."

(끊어버린 게 더 열받..)


수도 없이 많은 민원응대썰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 가장 아팠던 민원은 첫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평소처럼 전화를 받는데 갑자기 욕을 하기 시작하는 민원인.

정말 임신하지 않았다면 그냥 흘렸을 단어들.


하지만 청각이 예민하다는 태아가, 뱃속의 나의 아가가 그 욕을 듣는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온몸이 긴장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몇 번의 헛기침으로 가라앉히고 임산부라고. 욕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랬더니 임산부인지 딱 확인하러 갈 거라며. 어디 가지 말고 붙어있으란다.

정말 이 민원인은 자식도 없을까?

전화를 끊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 모습을 보던 부장님이 조퇴하라고 하신다.

그때 다시 걸려온 전화.

그 사람이다.

다른 직원이 전화를 당겨 받으니 그 직원 어디 갔냐며 임신한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한다.


하... 배가 조이고 당겨왔다.


서둘러 조퇴를 하고 엄마와 병원으로 갔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초음파결과 큰 이상은 없었지만 뭉침이 많아 누워서 최대한

안정하라는 말씀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찌나 화가 나고 억울하고 원망스럽던지.

휴직을 해버릴까 몇 번이고 망설였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날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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