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시스템 접근이 안 됐다.
익숙한 오류겠거니 하고 넘겼지만, 계속해서 같은 화면이 반복됐다.
결국 IT 담당자인 안 과장에게 채팅을 보냈다.
‘혹시 확인 가능하실까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떠올랐다.
오늘, 안 과장... 휴가라고 하지 않았었나?
무심코 썼던 메시지를 지우려다가, 언젠가 고 차장과 함께 했던 설날 아침이 떠올랐다.
-------------------------------------
신입사원이었던 그 시절.
나는 한국 회사의 해외지사에서 일했고, 본사와의 시차는 늘 골칫거리였다.
그날도 시스템이 멈췄다.
긴급하게 확인이 필요했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설날 아침 7시였다.
“차장님, 지금 연락드리면 실례 아닐까요? 아직 차례도 지내기 전일 텐데…”
고 차장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일은 일이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사무실 한쪽 구석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이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네, 설날 아침인데 미안합니다. 지금 바로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졸린 목소리.
우린 30분 가까이 전화를 붙들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쭈뼛거리며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메모를 적었다.
마침내 문제가 풀렸다.
고 차장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커피잔을 집어 들더니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봤지? 저게 프로페셔널이야.”
-------------------------------------
'오늘은 연차라 지금은 어려울 것 같고,
내일 오전에 먼저 확인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채팅창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내 회상도 거기서 멈췄다.
어떤 사람은 일과 삶 사이의 경계를 지키려 했고, 어떤 사람은 일 앞에서 책임의 무게를 먼저 세웠다.
전혀 다른 방향처럼 보였지만, 들여다보면 둘 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놓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다른 결로 같은 진심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프로페셔널이라는 말은 아마 그 사이 어디쯤에 머무는 말일지도.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치고, 고 차장처럼, 나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알겠습니다. 휴가 편히 쉬시고,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