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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공감이라는 능력

by 만숑의 직장생활

사람들이 말한다.


“저 사람, 진짜 똑똑해.”

“일처리가 빨라. 모르는 게 없어.”


그런 말에는 보통, 빠른 판단력이나 복잡한 계산 능력, 혹은 방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구조화된 사고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옆에는 늘 감탄이 따라붙는다.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지?”

“와, 진짜 똑 부러진다.”


그런데 가끔, 그 '정확한' 사람 옆에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사라지는 걸 본다. 말수가 줄고, 대화는 짧아지고, 관계는 기능처럼 단순해진다. 굳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스스로 말을 아낀다. 웃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농담도 점점 줄어든다.


누군가는 말한다.


“회사는 친구 사귀러 오는 데가 아니니까.”


어쩌면 그게 더 편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말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일 외의 감각을 접는다.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고맙다는 말조차 어색해진다. 결국 남는 건 정확한 일처리와 조용한 공기뿐이다.


일은 잘 돌아가는데, 언제부턴가 대화가 아닌 전달만 오간다. 이상하리만치 매끄럽지만, 어딘가 말라 있다. 모든 계산은 맞는데,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회사에서 그런 장면을 자주 본다.


어느 날 팀 막내가 실수한 자료를 냈고, 회의실에서 팀장이 정색하고 말했다.


“이건 기본도 안 됐어. 이걸 왜 이렇게 분석했는지 설명해 봐.”


막내는 당황한 얼굴로 몇 마디를 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끊겼다.


“그런 식이면 설득이 안 돼. 다음부턴 이렇게 하지 마.”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수였고, 지적은 맞았다. 분위기는 빠르게 정리됐다. 사람들은 조용히 회의실을 나섰다. 그날 오후, 나는 복도에서 그 막내와 마주쳤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오늘 되게 바보 같아 보였죠?”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지나갔다. 그 뒤로 그는 회의에서 다시는 질문하지 않았다. 자료도 늘 메신저로만 보냈고, 말을 아꼈다. 며칠 뒤, 그 이야기를 팀장에게 조심스레 꺼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알겠습니다 하던데?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공감은 그냥 착한 마음이 아니다. 분위기를 읽고, 타인의 맥락을 감지하고, 지금 이 말이 누구에게 어떻게 들릴지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건 타고나는 감성도 아니고, 단순한 친절도 아니다. 오히려 ‘정서적인 추론’이자, '상황 해석 능력'이자, IQ와 같은 '지능 영역'에 가깝다.


계산처럼 정답이 보이지 않고, 결과처럼 수치로 증명되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 사이의 균열을 미리 감지하고 불필요한 소진을 막아주는 조용한 기술이기도 하다. 공감은 누군가를 지치지 않게 만들고, 말을 이어가게 하고, 함께 일하는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해 준다.


정확한 말이 설득은 할 수 있어도, 그 말이 오래 남는 다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사람들은 일 때문에 퇴사하지 않는다. ‘업무량’보다 ‘말투’에 지치고, ‘성과’보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상처받는다. 우리는 ‘맞는 말만 남고 사람이 빠진 조직’이 되어서야 공감이 부족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이제 나는, 누군가를 두고 “똑똑하다”라고 말할그 사람이 얼마나 맞았는지보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물 수 있었는지를 본다.


공감도 능력이다. 조용해서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을 곁에 남게 하는 데는 그 능력이 가장 오래 작용한다는나는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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