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숑의 직장생활 Sep 02. 2023

[8화] 칼춤

젠틀맨이라고 불리시는 이전무님 밑에는 전무님의 오른팔 김이사 님이 있었다. 김이사님의 별명은 'Mr. FM'. 소위 말하는 프로젝트 내 군기 반장 역할. 복장 지적, 업무 지적, 행동 지적 등등 온갖 지적이란 지적은 도맡아서 하시는 분으로, 후배들이 많이 어려워했던 분이셨다.


개인적으로는 김이사님과 꽤 친게 지냈는데, 같이 얘기해 보면 의외로 감정의 개입 없이, 확고한 본인만의 논리 행동하시는 분이셨다. 문뜩 궁금했다. 김이사님은 후배들이 김이사님을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생겨서 물어봤다.


"이사님, 저 궁금한 거 있어요"

"뭔데요?"

"이사님, 왜 굳이 후배들한테 그렇게까지 엄격하세요? 그거 완전 꼰대스러운 거 아시나요?"

"저요? 저 꼰대 맞아요"


역시. 김이사님은 자기 객관화가 분명하시다.


"역시 알고 계실 줄 알았어. 그럼 김이사님은 후배들이 꼰대 같은 선배 안 좋아한다는 거 아시면서, 왜 굳이 군기 반장 역할을 도맡아 하세요? 미움받을 거 뻔히 알면서?"

"만숑님"

"네, 이사님"

"제가 전무님이랑 친한 거 알죠?"

"네"

"저는 어쨌든 전무님이랑 같이 일하는 사람인 이상, 전무님에게 필요한 역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맞죠?"

"네, 그렇죠"

"전무님 별명이 젠틀맨인 거 알고 있죠? 전무님이 왜 젠틀맨줄 아세요?"

"네, 당연히 알죠, 밑에 사람들한테 나쁜 소리 안 하시고, 항상 좋은 말해주시려고 하고, 격려 많이 해주시고 하니까..."

"전무님이라고 밑에 사람들한테 좋은 말만 하고 싶을까요? 전무님이 어떤 분이신데, 알고 보면 성격 장난 아니세요.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래요"

"뭐 전무님까지 올라가셨으니까 당연히 한 성격 하시겠죠"

"그런데 전무님이 어떻게 젠틀맨이라 이미지를 얻었을까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뭔가 김이사님이 말씀하려고 하는 것을 알 것 같다.


"음... 김이사님이 대신 먼저 밑에 사람들한테 쓴소리를 하고 정리해 주니까?"

"맞아요. 저는 그 역할을 해줄 사람이 전무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임원급 정도 되면은, 'gentleman's talk'를 하려고 하지 적을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나서서 먼저 이렇게 쓴소리도 하고, dirty hands 역할도 해주면, 전무님 입장에서는 너무 좋죠. 저번에 전무님 오셨을 때, 저한테 얘기했던 거 기억나요? '허허 김이사, 굳이 그렇게 빡빡하게 굴 필요 없잖아'라고. 그런 게 제가 봤을 때는 전무님 입장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인 거죠. 내가 알아서 총대 메고 얘기하면, 전무님이 정리해 주시거나, 적당히 해라라고 얘기하는 모습이. 뭐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굳이 그렇게  되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김이사님의 역할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단순히 본인의 기질이나,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 조직 내 명확한 목적과 역할에 맞추어 본인의 행동 양식을 정한다는 김이사 님의 논리가, 나는 또 다른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이사님, 이사님은 일부러 칼춤을 추고 계셨던 거군요.







이전 07화 [7화] 식당 예약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