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책임님이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말을 걸어왔다.
'오늘 시간 되시면 따로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좋습니다. 이따 같이 나가시죠'
박책임님이랑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어서, 둘이서만 따로 점심 먹자고 하시는 게 좀 새삼스럽긴 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점심은 박책임님이 내신다길래, 그럼 커피는 제가 살게요 하며 근처 카페에 들렀다. 같이 자리에 앉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킨 후, 박책임님이 조심스레 입을 여신다.
"저 이직합니다"
"네?"
네? 갑자기요?
"그렇게 됐어요. 사실 이직은 6개월 전부터 알아보기 시작했고, 최종 오퍼는 저번 주에 받았어요. 이제 팀원 분들께도 한 분씩 돌아가면서 말씀드리려고요"
6개월 전부터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참고로 박책임님 님은, 소위 말하는 팀의 '에이스'다. 일 잘하는 건 둘째 치고, 실장님의 신망도 매우 두터우셔서, 실장님의 개인 상담도 곧 잘해주시는 분이다. 팀에서도 인정받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시던 분이, 6개월 동안 아무도 모르게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이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다 좋은데요, 한 회사에만 오래 있다 보니까, 너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각도 들고, 다른 회사 경험도 좀 해보고 싶고, 뭐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마침 좋은 기회가 있어서 지원했었는데 운 좋게 됐네요"
놀랍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최종 오퍼를 받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심사숙고를 거쳤을지 짐작이 가기에, 박책임님의 결정을 응원하고 이직해서도 지금 회사에서처럼 잘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주위 동료들에게 회사나 팀에 대한 불만만 항상 얘기하고, 틈만 나면 이놈의 회사 때려치우고 더 좋은 곳으로 갈 거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시는 어떤 책임님이 생각났다. 그렇게 얘기하고 다니신 지가 벌써 1년이 넘어가는데, 아직까지 별 다른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이직 준비는 정말 하고 계신지도 의문이다.
그동안 필자가 직장 생활하면서 쌓은 빅데이터(?)에 의하면, 이직하는 분들 중 열에 아홉은 이직 전까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하고, 은밀하게 준비하신다. 그리고 정작 이직 얘기를 꺼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인물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회사에 대한 불만과 본인의 이직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분들은 대체로 끝까지 회사에 붙어 계신다. 왜 그럴까? 아직 그 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찾지 못했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빈 수레는 요란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