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숑의 직장생활 Sep 08. 2023

[10화] 지금 젖으러 갑니다

폭풍과 같은 1차 회식이 끝나고, 옆에 있는 맥주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주를 대체 몇 병을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알딸딸하게 약간 취한 채로 꽤나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요즘 회사에서 회식을 잘 안 하다 보니, 가끔 있는 이런 자리가 두에게 반가웠던 것 같다.


바람 좀 쐴  해서 잠시 밖에 나갔는데, 1차 회식 때 재미난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던 김책임님이 혼자 가방을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 김책임님, 여기서 뭐 하세요 안 들어가시고?"

"아, 만숑님. 저는 곧 집에 들어가려고요. 좀 피곤해서"


생각해 보니, 김책임님은 항상 2차 회식 때는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책임님, 그동안 회식하면 1차만 오셨던 것 같은데... 일부러 2차 안 가시는 거 아니에요?"

"아 저요? 하하.... 사실 2차를 별로 안 좋아해서, 웬만하면 1차만 하고 들어가 편이죠"


이상하다. 김책임님은 술자리에서 항상 쾌활하시고 미있는 분이데, 왜 굳이 2차를 피하실까.


"왜냐하면... 2차부터는 사람들 얘기가 너무 깊어져요. 그래서 전 좀 피곤하더라고요"

"네? 얘기가 너무 깊어지다니요?"

"저는 술자리는 Fun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회식이라는 게 너무 무겁고, 다들 분위기에 젖어 있으면, 들으면서도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2차는 잘 안 가게 되더라고요"


아니, 그래도 회식이라는 게 평소에 못하던 깊은 얘기도 하고 속마음도 털어놓고 할 수 있는 자리 아닌가요. 그럼 그런 얘기는 언제 합니까?


"진지한 얘기는 맨 정신에 커피 마시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술자리에서 진지한 얘기를 한다? 제 경험상 대부분 하소연이나 개똥철학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술자리는 그냥 생각 없이 웃고 떠드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저는"


김책임님은 그렇게 자리를 떠나셨고, 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역시나, 김책임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들 매우 '젖어 있는 상태'로 각자 나름대로의 철학과 감상들이 녹아든 '깊은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며 벨을 누른다.


"사장님~! 여기 맥주 500 하나 추가요~!"


기다려봐요, 저도  젖으러 갑니다.




이전 09화 [9화] 빈 수레는 요란한 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