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태양이 서로 자신이 더 강하다며 싸우고 있었다. 그때, 마침 길을 걸어가고 있는 한 나그네를 보게 되었고, 바람과 태양 중에 누가 먼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지 내기를 걸어 결론을 짓기로 했다. 먼저 바람이 힘껏 센 바람을 불어 외투를 날려버리려 했으나, 강도를 높일수록 나그네는 더 옷을 꽁꽁 여몄다. 결국 힘을 모두 써버려 포기. 이제 태양의 차례가 되었다. 태양은 나그네에게 가까이 다가가 뜨거운 햇빛을 쨍쨍 내리쬈고, 더워진 나그네는 외투를 벗을 수밖에 없었다. -이솝 우화 중
한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이유로 많은 부침이 있었고, 이로 인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많은 인원들도 계속해서 교체되어 갔다.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던 인원들이 기존에 다른 사람이 담당하던 일까지 맡게 되는 경우가 왕왕 생겨났다. 자연스레, 남아있던 사람들은 본인이 하고 싶지 않거나, 새로 맡기에 껄끄러운 성격의 업무들까지 하게 되어, 피로감과 불만도 쌓여가는 상황.
어느 날, 프로젝트 담당이신 이전무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만숑, 이번에 발표 준비한 자료 대충 봤는데, 너무 부실한 거 아니야? 아니, 그렇게 일처리 해서 어쩌자는 거야 대체?"
이거... 제가 새로 맡은 지 며칠 안 됐습니다. 일단 catch-up 할 시간을 좀 더 주시죠...
"만숑, 더 많이 배워야겠더라, 선배들 따라잡으려면 아직 너무 멀었어. 우리 맡은 일은 확실히 좀 하자. 보고서는 다시 수정해서 내일 다시 가져와 알았지?"
하아... 내 일도 아닌데, 욕먹고. 정말 의욕 확 떨어지네. 일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굳이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갈아 넣고 싶은 생각도 없고. 적당히 안 혼날 정도로만 마무리해야겠다.
몇 개월 후, 역시 중간에 교체된 프로젝트 멤버가 담당했던 일을 이어받게 되었다. 가뜩이나 생소한 업무로 인해 심란해하고 있는 나를, 팀 리더였던 김상무님께서 따로 커피 한 잔 하자며 불러 내신다.
"저번에 만든 보고서 보니까, 정말 핵심만 잘 썼더라. 그동안 발표하는 거나, 회의 진행하는 거 보니까, 이제 웬만한 이사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더라고. 그래서 이번 일도 내가 굳이 만숑한테 맡기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배정했어. 이번 일이 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만숑 능력이면 잘할 수 있겠지? 나는 따로 신경 안 쓸 테니까, 만숑만 믿을게"
김상무님이 배정해 주신 업무에 대해, 아무도 나에게 열심히 하라고 명령하지도, 결과에 대해서 피드백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그 어떤 업무보다 더 열심히 했고, 멋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김상무님은 '바람과 태양'의 이솝우화를 알고 계셨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