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방향성이라도 알려줘야지요. 대체 뭘 어떻게 보완하라는 건지… 이번이 벌써 세 번째 피드백이에요.”
답답한 마음에 옆자리에 있던 이 과장한테 하소연을 쏟아냈다.
“김 팀장님이 원래 그러시잖아요.”
이 과장은 잠시 웃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근데, 저도 그분이 왜 그러실까 한 번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뭐 딱히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그럴듯해 보이는 결과물을 원하시는 거겠죠. 아이디어는 딱히 없어도.”
이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음, 그게 표면적인 이유는 맞을 수도 있죠. 근데, 그런 피드백을 반복해서 하게 되는 ‘패턴’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예전 이야기를 꺼냈다.
“신입사원 시절에, 저희 팀 부장님이 절 무척 싫어하셨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죠. 근데 1년쯤 같이 일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분은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을 몹시 불편해하시더라고요. 본인의 권한 밖에서 일어나는 변수, 혹은 지시가 먹히지 않는 후배를 정말 싫어했죠.”
나는 흥미가 생겨 물었다.
“그럼 과장님은 그 이유를 알고 나서 뭐 어떻게 하셨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엥? 그냥 알기만 하고 끝낸 거예요?”
“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해하고 나니까 괜찮아졌어요.”
“정말요?”
“그 이후로 제 안에서도 깨달음이 있었어요. 아, 나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구나. 그게 제 안을 관통하고 있는 심리더라고요. ‘이해’가 되면 괜찮아지고, 이해가 안 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이 과장은 말을 이어갔다.
“사람마다 그걸 건드리면 예민해지는 포인트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관계’에 예민하고, 어떤 사람은 ‘성과’, 어떤 사람은 ‘통제’. 저처럼 ‘이해’라는 감정이 중심인 사람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못 참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가 반복적으로 이상한 피드백을 준다거나, 과하게 반응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심리로 움직이는가’를 고민해 보는 것도 꽤 도움이 돼요.
그 사람의 단순한 말이나 행동보다, 그걸 유도한 심리적 배경을 상상해 보는 거죠.”
이 과장은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아 맞다, 김 팀장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요. 제 생각에는... 그분은 요즘 일도 많고 책임질 일도 많다 보니까, 점점 ‘방어적’이 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보고서도 강한 주장보다는 무난한 내용,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포맷을 선호하시는 거죠. 그냥 '좋게 좋게 가자'는 마음.”
그는 씽긋 웃었다.
“그렇다면, 그런 심리를 괴롭히지 않는 방향으로 보고서를 다시 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네요.”
그의 말은 조용했지만, 내 머릿속엔 쿵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