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때였다. 부장님께 처음으로 업무지시를 받았다. 마음속에서는 ‘이제 드디어 나도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설렘이 차올랐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료를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을지 며칠 동안 붙잡고 있었다.
엑셀 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했고, 부족한 부분은 팩트체크로 채웠다. 도표를 다듬고, 그림과 도식으로 흐름을 설명했다. 기승전결까지 맞춰진 PPT를 보며 스스로도 뿌듯했다. ‘이 정도면 완벽하다’는 확신 속에 최종본을 내밀었다.
“부장님, 말씀하신 자료 다 작성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부장님은 고개를 들어 자료를 한참 보시더니 미간을 좁히셨다.
“이거, 내가 시킨 지 며칠 됐지?”
“…4일쯤 된 것 같습니다.”
“이거 급하다고 하지 않았나? 왜 지금 줘?”
나는 당황했지만 사실을 말했다.
“말씀하실 때 언제까지 달라는 얘기는 없으셔서, 급한 건 줄은 몰랐습니다.”
부장님은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자료는 왜 이렇게 복잡해? 그냥 간단히 정리해서 메일로 보냈으면 되는 거였어. 이거 만드느라 시간 많이 썼지?”
나는 나름대로 이유를 설명했다. 근거가 부족해 보였고,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말.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다 좋아. 근데... 그건 니 생각이고.”
그날 배운 게 있다. 일이란 건 정성만 들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혼자만의 판단과 노력은 언제든 빗나갈 수 있다는 것.
그 이후로는 ‘짜잔~’ 하고 완성본을 내미는 방식은 지양한다. 진행 중에 확인하고, 중간에 공유한다. 같은 업무라도 보는 관점은 다르고,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도 다르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열심히 고민한 결과물이라도 결국은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것. 회사에서의 일은 그 지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