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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숑의 직장생활 Oct 03. 2023

[15화]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컨설팅에서 근무할 당시, 고객사 투자 팀과의 협업 과제를 담당하게 됐다.


계속 상무님, 이사님 밑에서만 일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하나의 과제를 리드하게 된 것이다. 나름 논리나 말발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서 빨리 나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같이 논의할 PPT 자료도 완벽하게 작성했고, 요청할 내용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준비했다. 충만한 자신감을 가진 채, 투자 팀과미팅을 시작했다.


"... 그래서, 지금 얘기했던 부분은 개선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 근거는 좀 전 장표에서 설명드린 내용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투자 팀에서는 마지막에 나와 있는 요청 사항에 대해서, 한 번 보시고, 그 방향으로 같이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우리 쪽 일이 설명해 주신 대로 바뀌면, 지금 팀에 사람도 많이 없는데 일의 부하가 너무 커져요"


깝깝하네.


"책임님, 이게 지금 선택 사항이 아니에요. 전체 회사가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일을, 투자 팀에서 나 홀로 반대하면, 지금까지 준비했던 일들이 다 어그러지는 거라서요.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업무 하시면서, 투자 팀에서 따로 고민하셔야 할 문제인 것 습니다"

"아니, 그렇게 일이 바뀌면 우린 일 못한다니까요. 사람을 뽑아주고 그런 얘기를 하던가. 일이 안 돌아가요 일이"


아니 그건 본인들이 방법을 찾아내야지. 왜 나한테 그래?


"책임님, 사람을 뽑고 말고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일단 이 일은 하셔야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료 한 번 보시고, 저희가 요청한 내용에 있어서 틀린 부분이 있거나, 앞으로 어떻게 협업할 지에 대해서만 검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용에도 문제없고, 취지도 좋고 다 좋은데요. 우리 같은 실무가 그럼 일을 못한다니까요. 자꾸 이렇게 얘기하실 거면, 저희 쪽도 저희 쪽 실장님한테 따로 보고 드리고, 못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서로 간의 얼굴만 붉히고, 소득 없이 미팅이 끝났다. 나는 분명히 올바른 내용과 해야 할 일을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설명했는데, 이해를 못 하는 한 명의 똥고집 책임을 만나, 도저히 일 진행이 안 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우리 쪽 상무님께 말씀드렸다. 상무님은 내용을 다 듣더니, 다음 미팅에는 본인이 같이 참석하시겠다고 하셨다.


다음 미팅. 나는 내심 상무님께 내가 얼마나 고리타분하고 깝깝한 인물을 만나고 고생을 했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미팅이 시작됐다.


"제가 듣기로, 지금 투자 팀에서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많다고 하던데,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네 상무님, 저희 쪽도 설명 주신 부분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만, 실제 저희 팀 일이 너무 많아서 제안 주신 방향으로 가기에는 무리가 좀 있습니다"


"네, 당연히 그러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가 투자뿐만 아니라 타 부문 쪽에서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어, 이게 한 팀에서 못하겠다고 한다고 다 중단될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요... 아까 프로세스가 바뀌면 일이 더 많아진다고 말씀 주셨는데, 정확이 무슨 문제를 생각하고 계신지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게 잠시만요, 제가 컴퓨터 가지고 와서 보여드릴게요"


책임님이 컴퓨터를 가져오더니, 왜 일이 많아지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아, 지금 설명주신 부분은, 약간 오해를 하고 계신 게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시스템에서 지동으로 계산해 줄 부분이고요. 제가 생각했을 때 오히려 문제는 아까 잠깐 언급하신 A부분에서 사람이 개입이 필요할 거 같긴 하네요"

"아 그런가요? 만약 시스템이 자동으로 계산해 주면 그렇게까지 무리가 가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어쨌든 프로세스가 바뀌는 부분이 또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부담이 가긴 하네요"


"당연히 부담이 가시겠죠. 저희 쪽에서도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하지 않게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고, 혹시라도 책임님 말씀하신 것처럼 문제가 생기더라도, 저희가 계속 도와드리면서 follow-up 하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시지 마시고, 일단 저희가 준비한 내용만 한 번 검토해 주세요. 이후에 필요한 내용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뭐 저희도 하시는 일에 대란 취지는 너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저희가 지금 일이 너무 많아서 허덕이고 있는 지경이거든요. 그래도 상무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면 저희도 심이 될 것 같습니다. 요청하신 내용은 검토해서 회신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미팅이 끝났다. 상무님과 회의실을 나오는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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