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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숑의 직장생활 Sep 26. 2023

[14화] 반성

신입으로 들어온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똑똑하고 착한 친구였지만 아무래도 신입이다 보니, 업무적으로 이것저것 피드백 줘야 하고, 쓴소리도 가끔씩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나 스스로도 말이나 행동을 조심한다고 하지만, 피드백이라는 게 사실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기분 나쁜 티 안 내고 묵묵히 따라와 주는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대견스러웠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신입 친구와 업무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번뜩 엊그제 신입이 쓴 메일을 읽고, 참 잘 썼다고 혼자 생각했었던 게 기억났다. 사한 거지만, 그래도 마침 기억이 떠오른 김에, 얘기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야, 엊그제 상무님한테 썼던 메일 있잖아. 군더더기 없이 되게 잘 썼더라. 원래 메일 같은 거 많이 써봤어?"


무표정하게 조용히 나의 말을 듣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며 대답한다.


"아, 그 메일이요. 사실 제가 그 메일 작성하기 전에, 다른 분들이 쓴 여러 메일을 참고해서, 떻게 쓰면 될지 공부를 좀 했어요. 실제로 메일도 연습 삼아 여러 번 써보고요. 저번에 만숑님이 말씀하신 내용들도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그런 것들 생각하면서 한 번  써봤습니다. 찮다고 하시니 다행이네요"


순간 0.5초간 잠시 멍해졌다. 나는 금방 쓰는 메일인데, 이 친구는 그냥 쓴  아니고, 나름 엄청 노력해서 작성한 메일이었구나. 좀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나는 지금껏 주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업무들을 얼마나 당연시하게 여기고 있었나. 누군가는 이메일 하나 쓰기 위해 몇 번이고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고, 누군가는 PPT 장표 한 장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고민했고, 또 누군가는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수 십 개의 웹사이트를 탐색했을 것이다. 런 노력들은 간과한 나는 내가 몇 년 더 경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표면에 드러난 결과만 보고 빨간펜을 찍찍 그어 었나.  


어떤 이에겐 쉬워 보이는 일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겐 맘에 들지 않는 결과물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이면에 어떤 노력과 고민을 했는지 공감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시선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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