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회사를 다닐 때, 미국에서 사장님이 2박 3일 간 한국을 방문하셨다.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 임원들과 미팅하는데 보내시고, 마지막 날 점심에 10명 남짓한 사원, 대리 직급의 직원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만드셨다. 나 또한 해당 점심 식사 자리에 초대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한국인 사장님이랑 식사하는 자리도 불편한데, 영어로 얘기하는 미국인 사장님과의 자리는 오죽하겠는가. 얼굴에 억지웃음을 장착하고, 혹시라도 나에게로 향하는 질문이 나올까 두려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한국말 의역) 내가 며칠 한국에 있으면서 미국과 정말 다르다고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젊은 친구들이 직장에서 too much 신중하고 수동적이라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주니어들은 시니어들이 말하는 것에 반대 의견 내는 것을 꺼려하고, 그냥 시키는 일만 하는 것 같더라. 나는 너희 같은 젊은 사람들이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앞에 놓인 고기를 집어 먹으며, 사장님 말씀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던 나. 그런 나를 발견하신 사장님.
"만숑이라고 했지? 어떻게 생각해?"
모두의 눈이 나에게로 향한 그 순간. 나는 씹고 있었던 고기를 삼키며, 최대한 알기 쉽게 나의 생각을 정리하여 영어로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시니어들의 경험이 주니어들보다 많기 때문에, 실수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보통은 시니어들이 만든 가이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사장님께서 가만히 들으시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신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늙고 젊음을 나누는 기준이 뭔 줄 알아? 나이? 직급? 아니야. 나는 'Doing silly things'가 기준이라고 생각해. 늙은 사람들은 바보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늙은 거야. 젊은 사람들은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젊다고 하는 거야. 왜 한국 사람들은 모두가 늙은 사람들처럼 일하려 하는 거야?"
"아, 그 이유는 회사 차원에서 보면 직원들의 실수는 전체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예를 들어 금전적 손실이라던지, 일정의 지연이라던지..."
"No, no, 오히려 그런 상황들에 있어서 시니어들이 필요한 거야. 주니어들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를 보완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No mistake, no learning, right?"
'... 맞아요, 다 맞는 말인데. 그게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그런 이상적인 얘기가 맞지 않아요'라고 얘기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사장님이 말씀하시려고 하는 포인트는 충분히 알아 들었기 때문에, 굳이 소모적인 논쟁은 피하고 싶었다.
사장님, K-직장생활 맛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