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회사에 출근할 때, 회색이나 검은색 같은 무채색 계열의 옷을 많이 입고 다닌다. 무채색 옷들이 제일 무난하기도 하고, 그냥 그런 평범함이 익숙하다고 해야 할까. 가장 눈에 띄지 않는 복장들을 '나도 모르게' 선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모 브랜드가 주최한 신상 운동화 발매 기념 이벤트에서 무지성으로 응모한 것 중에 하나가 우연히 당첨이 됐는데, 연한 분홍색, 연두색 등으로 디자인된 꽤나 화려한 스타일이었다. 리셀하기에는 가격도 안 맞고 해서, 방구석에 처박아 놓았다가, 최근 아까운 마음에 꺼내서 신어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꺼내 보니 더 화려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그나마 그 운동화와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찾아서 입어 봤다.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그래봤자 운동화인데 누가 보겠어.
왠지 모르게 떨리는 마음으로,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회사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옆자리에 배책임님이 운동화를 보고 '오~!' 하며 아는 체를 하신다.
"오 만숑님, 운동화 새로 사셨나 보네요, 완전 이쁘다. 어디서 샀어요?"
"아 그냥 가격이 싸게 나왔길래 하나 사봤어요"
"잘 어울리세요, 평소에 안 입으시는 스타일이라 그런지 뭔가 색다르네요"
그런 칭찬 (?)을 들어서 그런가. 그날은 하루종일 사람들이 내 신발만 보는 것 같고, 마음이 불편했다. 아 역시, 송충이는 솔잎은 먹고살아야 하나보다. 괜히 운동화 아깝다고 신고 와서 오버하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튀는 거 같아, 오늘까지만 신고 안 신어야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날은 평소 입던 모습으로 출근을 했다.
"안녕하세요 만숑님, 오늘은 어제 신고 오셨던 운동화 안 신고 오셨네요?"
"아 그게, 운동화 색깔이 너무 튀는 거 같아서요, 좀 부담스러워서요, 눈치 보이기도 하고"
배책임님이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이 반문하신다.
"운동화가 눈치가 보인다고요? 그걸 누가 신경 쓴다고 그래요, 이쁘기만 하던데"
"그런가요? 전 좀 익숙지가 않아서 하하. 이상하게 보이거나 하진 않았나 보죠?"
"아니, 만숑님은 운동화 하나 눈치 보시면서 일은 대체 어떻게 하세요? 저 같았으면 오히려 튀어 보이는 게 좋아서 더 신나게 신고 다녔을 텐데"
생각해 보니, 나름 다른 사람들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자부했었는데, 의외로 운동화 하나 신는 거 가지고 '나도 모르게' 이렇게 쪼그라들고 있었다니. 뭔가 배책임님께 속마음을 들킨 거 같아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도 새삼 깨달았다. 남들한테는 눈치 보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고 하면서, 정작 나 스스로는 실천을 못하고 있었구나.
아마 그때부터였던가. 알록달록 운동화도 신어보고, 시계줄도 파란색으로 바꿔보고, 화려한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도 입어보고 기존에 나의 모습을 '일부러' 바꿔 보고 있다.
남들은 눈치 못 챘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조금씩 회사에서 일탈을 즐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