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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숑의 직장생활 Aug 16. 2023

[2화] 일 하면서 배워야 할 '딱 한 가지'

대기업에서 일하는 장점 중의 하나는, 일의 체계가 상대적으로 잘 잡혀 있다는 것이다. 신입이나 전혀 다른 일을 하던 경력직이 들어와도, 웬만하면 매뉴얼도 잘 되어 있고, 주위에 물어볼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일을 배우기도 쉽고, 적응도 빠른 편이다.


의 체계가 잘 잡혀 다는 것의 단점 중의 하나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굳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기계의 한 부속품으로 일한다는 의미도, 어찌 보면 이미 구축되어 있는 거대한 프로세스 안에서 본인에게 떨어지는 일만 문제없이 처리하면 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필자의 경우도,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이직 했을 때 느꼈던 문화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국내 중소기업을 인수합병하여 국내 진출을 막 시작한 외국계 회사였는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 없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가 전에 익숙했던 그림은 팀에 나의 담당 사수가 있거나, 이미 프로세스화된 업무를 인수인계받아 열심히만 하면 되는 모습이였는데, 이 회사는 팀의 시니어들에게 물어봐도 '그걸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스스로 찾아서 해야지'와 같은 대답만 있었을 뿐었다. 그때의 내가 느꼈던 무력감. 그리고 불만. 왜 나의 상사여야 하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모른다고 하지? 회사 프로세스가 아주 개판이네. 나한테 책임을 다 떠미는 거 아냐?


필자 세 번째 직장이었던 컨설팅 회사에서의 첫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고 나면, 직원들을 따로 교육하거나 하는 별도의 '트레이닝' 과정이 없다. 입사하면, 다음 날 바로 현장에 투입시키고, 과제를 던져준 다음에 한 번 해봐라는 식이다. 나도 첫 과제를 받고, 주위의 가이드나 도움 받을 곳을 찾아봤지만, 모두 제 각각 맡은 일들 수행할 뿐, 역시나 네가 맡은 일은 네가 고민해 봐라라는 식의 답변이 다였다.


그렇게 첫 과제를 받고 끙끙대기를 일주일, 프로젝트 담당이이사님이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말씀셨다.


"처음이라 많이 어렵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지? 내가 시간이 많이 없어 못 챙겨줬는데, 이제 좀 시간이 생겼네. 과제 같이 한 번 볼까? 그 파일 열어볼래?"


나는 시킨 대로 파일을 열어 화면에 띄웠다. 이사님이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입을 여신다.


"지금 전체 내용을 보면 xx의 정의가 각 팀마다 다르게 해석되는 게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럼 일단 관련한 모든 사례를 찾아서 많은 팀들이 생각하는 공통적인 의미를 도출해 보고 각 팀한테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

"다른 선진 사례들과 비교해서 지금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개선 여지가 있는지 분석해 보면 우리가 원하는 특정 포인트들을 좀 구체적으로 좁혀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저 그래프 보면 전체 시장 크기는 커지는데 반해, 우리 쪽 매출 성장률은 되게 미비한데... 그때 영업 팀에서 준 자료 확인해 봤어? 안되면 일단 인터뷰 요청해서 사실관계먼저 확인해 보자"


무수히 쏟아지는 이사님의 아이디어들. 나는 일주일을 끙끙 앓았는데, 뭐가 달랐던 걸까.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다고 생하셨는지, 이사님이 나를 보 쌩긋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왜 놀랬어? 이런 거 누가 안 가르쳐준다. 나도 주위 사람들 일하는 거 보고 스스로 터득한 거야. 너도 일하면서 많이 보고 배워"


'우리 회사의 프로세스를 익혀놔. 그럼 그 지식 가지고 어디든 가서 써먹을 수 있을 거야'라고 하던 책임님이 계셨다. 하지만 몇 번의 이직을 통해서 내가 느낀 점은, 이전에 경험했고 배웠던 지식들을 새로운 직장에서 100% 적용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환경에서, 회사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었고,     나에게 업무도 달랐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은, 말 그대로 '참고 사항'일 뿐, 그 이상 그 이하의 것도 아니.


오히려 정말 중요한 것, 내가 일하면서 정말로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몇 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그때 이사님과 나의 차이. 이사님은 있었고, 나는 없었던 것. 이사님이 그동안 일하면서 스스로 터득했다고 하시고, 나한테도 보고 배우라고 했던 그것. 몸을 꾸준히 단련하듯, 고민할 수 있는 뇌의 근육.


그것은 바로 '사고(思考) 할 수 있는 '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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