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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숑의 직장생활 Aug 08. 2023

[18화] 상사를 일깨울 수 있는 한 마디

이직 후 1년이 지나도록, 로운 상무님과의 관계는 소원했다. 깊은 대화는 바라지도 않지만, 업무 외 사적인 대화나 개인적인 그분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조차 없었 것 같다. 내가 어느 정도 상무님의 기대에 부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지에 대한 설명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어느 날, 전 직장에서 같이 일 이사님저녁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다. 김이사님새로 다니고 있는 회사는 어떤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물어보셨다.


"우리 회사 좋죠. 요즘 딱 한 가지 고민이 있는 것 빼곤..."


하고, 상무님과의 불편한 관계 및 답답함에 대해서 토로했다. 잠자코 듣고 계시던 이사님이 반문하신다.


"만숑님이 상무님한테 먼저 가서 얘기해 봤어요? 지금 나한테 얘기한 고민들이나 어려운 점들?"

"얘기해 보려고 했죠. 그런데 상무님 스타일이 떤 얘기든 물어보면 항상 바쁘다고 하시고, 귀찮은 티 팍팍 내니까, 먼저 다가가서 말씀드리기도 애매하더라고요. 그냥 이번에 눈 딱 한 번 감고, 커피 한 잔 사달라고 얘기해 볼까요?"

"음... 커피 한 잔 사달라고 하는 말은 너무 뭐랄까... 좀 형식적 느낌이 강해서 별 효과는 없을 거 같고... 만숑님은 상사 입장에서 후배가 하는 말 중에 제일 뜨끔한 말이 뭔지 알아요?"


뜨끔한 말?


"소주 한 잔 사주세요"

"소주... 요? 전 맥주파인데, 맥주 사달라면 안 되나요?"


"맥주 사 주세요도 좀... 너무 캐주얼스럽다고 해야 하나? 이게 뭐냐면... 소주 사달라고 했을 때의 그 느낌이 있거든, 뭔지 느낌 안 와요?"

"아... 잘 모르겠는데, 설명 좀 더 해주세요"


"자 봐봐요. 어느 날 만숑님 직장 후배가 와서 만숑님한테 '선배님, 저 소주 한 잔만 사주세요'라고 한다면, 만숑님은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음... 얘가 요즘 많이 힘든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소주 먹고 싶다고 하지? 퇴사하려는 거 아냐? 뭐 그런 생각들?"

"그렇지, 바로 그 느낌! 또?"

"그렇게 궁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평소에 얘를 잘 못 챙겨줬었나? 오죽하면 나한테 와서 소주 한 잔 사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에 좀 미안해지기도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먼저 와서 얘기해 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그렇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소주 한 잔 사주세요'의 느낌이 바로 그거예요. 상사 입장에서는 후배가 그렇게 얘기해 주면 놀랍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도 들고 복합적인 생각이 든단 말이죠. 그렇게 대화를 시작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사님, 저는 상무님이랑 둘이 주 마시면서까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만나서 하소연하라는 건가요?"

"개인적인 하소연이 아니라, 팀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나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어필하고, 그것에 대한 상무님의 생각이나 요청드리고 싶은 일들을 얘기해야지. 기껏 만났는데, 팀장임은 만숑님 푸념이나 듣고 싶어 하겠어요?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어떻게 하면 상사와 진솔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얘기하는 거예요. 만숑님 고민 상담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사님, 그런 얘기면 그냥 커피 마시면서도 할 수 있는 얘기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상무님이랑 단 둘이 술 먹자고 얘기하는 건 좀 부담스러운데"

"그러니까 요즘 친구들이 상사와의 관계어려워하는 겁니다. 만숑님이 이번에 나한테 먼저 연락해서 술 한잔 하자고 했잖아요?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알아요? 아까 만숑님이 얘기한 것처럼, 아 내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그래도 먼저 연락해 주니 고맙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상사들 입장에서는 귀찮아서 안 챙기는 게 아니라, 미처 생각을 못해서 못 챙기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리고 상사들이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외로운 사람들이야... 밑에 사람들한테 먼저 다가가기도 힘들어 요즘. 그런데 후배 한 명이 먼저 다가와서 소주 한 잔 사달라고 한다? 그럼 너무 미안하고 고맙지"


오케이... 알았어. 여기까지는 이해했어.


"그러면 반대로 제가 먼저 그렇게 제안했는데 상무님이 싫다고 하면 어떡해요? 아니면 이리저리 계를 댈 수도 있고"

"밑에 사람이 굳이 먼저 와서 소주 한잔 사달라고 하는데 거절하거나 피한다?"


이사님이, 술 한잔을 들이켜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씀하신다.


"그럼 바로 손절해야죠, 그런 상사들은 만숑님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얼른 다른 팀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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