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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그 남자의 영업 비밀

by 만숑의 직장생활

내가 있던 팀은 당시 회사에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었고, 그 중심엔 이 전무가 있었다. 성과는 물론이고, 똑똑하고, 말투는 늘 젠틀하고, 주위 사람도 잘 챙겼다.


지방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무렵, 이 전무와 단 둘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다.

"지방에서 고생 많지? 사람들은 좀 어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이 전무가 조용히 듣고 있던 내 눈치를 살피며 웃었다.


"어휴, 나만 계속 질문했네. 내가 무슨 취조하는 거 같잖아. 만숑은 뭐 할 말 없어?"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실 하나 있긴 해요. 전무님은 술자리도 많고 출장도 계속 다니시고, 미팅도 끊임없이 하시잖아요. 전 그런 생활이 너무 피곤할 것 같은데... 안 힘드세요?"

이 전무는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물끄러미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맥주 한 모금을 넘기며 말했다.

"힘들지. 나도 제안서 마감 앞두고 밤새고, 부사장이랑 식사할 땐 아직도 긴장돼. 고객사 사람들한테 설득하고, 때로는 비위도 맞춰야지. 피곤하지."

그러고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야... 그런 게 나한테는 전부 수단이야."

"수단이요?"

"그래. 나는 우리가 하는 일이 고객이 더 나은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게 내가 이 일을 20년 넘게 해 오는 이유야. 그 목적이 분명하니까, 출장이든, 술자리든, 고객사 미팅이든 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는 거지."

나는 멍하니 들었다. 이 전무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반대로 말해볼까? 만약 그 목적이 없다면? 그럼 지금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전부 자체가 목적이 돼버리는 거야. 출장이 목적이고, 술자리가 목적이고, 고객사 비위 맞추는 게 목적이 되는 순간... 그건 진짜 고역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무는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만약 내가 지금 ‘이 고객을 설득해서 과제를 따내는 게 목적’이라고 해보자? 근데 그걸 따내려면 부사장이 도장을 찍어야 하고, 그 부사장을 설득하려면 그 밑에 전무가 먼저 납득을 해야 되고, 그 전무한테 접근하려면 평소 내가 좀 껄끄러워하는 상무들이랑 먼저 밥을 먹어야 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 그럼 그 상무들과 밥 먹는 자리는 뭐야? 고역? 아니야. 그냥 과제를 따기 위한 수단인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하기 싫은 일도 ‘견딜 수 있는’ 일이 돼. 왜냐하면 그건 목적을 위한 길이니까. 문제는, 그런 목적이 없이 이 일들을 하라고 하면... 그건 누구한테나 고통이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 전무는 마지막 잔을 천천히 비우며 말했다.

"지금 일이 힘들다면, 한번 생각해 봐. '내가 여기서 얻고 싶은 건 뭐지?' 그걸 목적이라고 부르자. 그 목적이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걸 향하고 있는지 살펴봐. 그런데 그게 잘 안되고 지금이 고통스럽다면, 이유는 세 가지 중 하나일 거야."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들어가며 말했다.

“목적이 없거나. 목적이 잘못됐거나. 목적은 맞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목적과 전혀 관련 없는 일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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