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의 꽃은 영업이다. 운 좋게도, 내가 일했던 팀은 당시 회사에서 매출 1위를 찍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이전무님이 계셨다.
이전무님은 젠틀하시고, 똑똑하시다. 심지어 주위 사람들도 잘 챙기신다. 그날도, 프로젝트 때문에 지방으로 장기간 출장 가 있었던 내가 잠시 서울에 들렸을 때, 따로 시간을 내어 술을 사 주셨던 날이었다. 지방에서 고생이 많다, 프로젝트 어려운 건 없냐, 사람들은 좀 어떠냐 등 이것저것 얘기하시다가, 본인이 계속 질문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민망하신 듯 여쭤보신다.
"어휴, 나만 계속 질문했네, 내가 무슨 취조하는 거 같잖아... 만숑은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사실, 장기간 프로젝트로 모두가 매너리즘에 빠진 상황에서, 똑똑한 이전무님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긴 했었다.
"아, 저 사실 하나 있긴 한데요, 전무님은 평소에 술자리도 많이 하시고, 출장도 계속 다니시고, 고객들이랑 미팅도 자주 하시잖아요. 매번 그렇게 생활하시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실 것 같고, 피곤하실 것 같은데, 안 힘드세요?
"...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많이 힘들어하지?"
은근슬쩍 물어보려고 했는데, 금세 질문의 의도를 알아채신다.
"아 네, 많이 힘들어하죠... 뭐 근데 저희만 힘든 것도 아니고, 다른 분들도 다 고생하는데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리 친구들이 많이 고생한다고 나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어... 고생이 많다"
짠.
"우리 친구들한테 한 가지 얘기해주고 싶은 건 있어. 내 얘기를 잠시 하자면, 알겠지만 나는 컨설팅에서만 20년을 넘게 일한 사람이잖아. 그 정도 일을 해보니까,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목적 같은 게 생기더라고"
"목적이요?"
"응, 나는 컨설팅을 하는 목적이 '고객사가 더 나은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게 내가 컨설팅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출장을 다니고, 고객들과 끊임없이 미팅을 하는 모든 일들이나 활동들은, 내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들인 거야"
"아까 나한테 안 힘드냐고 물었지? 힘들지. 나도 밤새면서 제안서 작업하는데 똑같이 스트레스 받고, 사장님이나, 부사장님이랑 식사할 때도 똑같이 불편하고, 맨날 고객사들 만나면서 설득하고 때로는 비위도 맞추고 해야 되는데 고단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들은 내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들이라고 생각해. 만약에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 없이 이런 일들을 지금같이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 받아서 절대 못하지"
"우리 친구들도, 아무리 상황이 힘들다고 해도, 이직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환경이 변하지는 않는 거잖아? 그러면, 만약 나라면, 내가 여기서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부터 고민하고 그걸 나의 목적으로 삼겠어.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맡은 과제를 고객에게 설득해서 한 번 프로젝트로 만들어보겠다'라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해보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만약 부사장님의 승인이 필요하다면 바로 밑에 전무님을 설득해야 되는 거고, 전무님을 설득하려면, 내가 싫어하는 상무님과 친해져야 되는 거고, 그러면 자연스레 상무님과 밥 한 번은 먹어야 되지 않겠어? 그럼 상무님과 밥을 먹는 게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기 때문에 그리 고역스러운 일은 아니게 된다는 말이야"
"그러기 위해선,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내가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수단이 될 수 있을 만큼의 목적이 분명한가부터 고민해 봐야지. 그 목적이란 게 없으면, 일하면서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목적 그 자체가 되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지거든"
"지금 회사 생활이 힘들다면,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얻고자 하는 목적부터 고민해 봐.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들인지 생각해 보고. 그럼 힘들어하는 이유는 셋 중에 하나일 거야. 목적이 없거나,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일들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