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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25. 2023

Heterotopia

나무인간 54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에 관해 이렇게 정의했다. ‘요컨대 거울, 그것은 유토피아이다. 장소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거울 안에서 나는 내가 없는 곳에 있는 나를 본다. [거울의]표면 뒤에 가상적으로 열리는 비실제적 공간에 나는 저편 내가 없는 곳에 있다. 스스로에게  자신의 가시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그림자, 그것은 내가 부재하는 곳에서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볼  있게  준다. 거울의 유토피아. 하지만 거울이 실제로 존재하는 , 그리고 내가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그것이 일종의 재귀(Recursion) 효과를 지니는  그것은 헤테로토피아이다.’ 이렇듯 영원히 게토화 되지 않는 유토피아- 장소 없는 장소에서 우리 순기능을 못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중력을 망각한다. 푸코가 주장한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의 지독한 헤테로토피아만이 유토피아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있다. 동시에 예술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기 하여 검은 거울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버릴  없다.




자신의 사랑이 빈집에 갇혔다- 했던 기형도 시인조차 빈 것의 슬픔을 메우는 일은 그의 생이 다 할 때까지 영원히 불가능할 거라 했다. 하지만 화가는 유토피아의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부재로부터 평범히 태어나지만 반드시 성장하려 그 거리를 가늠한다. 화가는 헤테로토피아로 걸어간다. 그러기 위해 그곳에 위치한 사건을 공허한 사건으로 바라보며 지나치지 않는다. 흡사 자신의 혈관에서 피어오른 검은 호수에 얼굴과 몸을 씻듯, 그것을 다양한 이유로 덮고 더 기억조차 않으려는 사람들과 달리 예술가는 만지고 맛을 느끼고 마주 보는 법을 익힌다. 그것은 시인처럼 하늘과 별을 읽는- 헤테로토피아를 가리키는 용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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