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신화가 그렇지만, 오르페우스 행적에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이 있다. 저승의 문이 보였을 때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의 계약을 어기고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에우리디케는 남편과 육체로서 이어지는 그 황홀한 시간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지만, 남편의 사소한 실수로 또다시 죽어야 할 운명에 놓인 것이다.
그때 님프는 리라를 든 남자를 증오하고 원망했을까. 아니었다. 에우리디케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직도 자기를 숭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를 갈망하고 사랑하는, 오르페우스의 충만한 눈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이승의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시간과 맞먹기는커녕 오히려 그 전체를 넘어섰다.
만일 오르페우스가 유혹을 견뎌내고 아내를 이승으로 인도했다면 어땠을까. 남편은 자신의 의지로 도덕적 승리를 거머쥔 자가 되겠지만 에우리디케는 단지 그의 의지가 실현된 ‘여성’로 남을 것이다. 오르페우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사에, 에우리디케라는 여성적 균열을 배치함으로써 신화는 스스로 우리의 습관적인 기대를 배반한다.
어쩌면 문학이란 자신의 모세혈관까지 스며든 뿌리 깊은 자기 부정이 아닐까. 이 불편함은 아득히 먼 옛날로부터 이어지는, 모계에 대한 원시적 본능과 무의식이다. 그러므로 시의 비밀은 여기서 튀어나온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시는 벼락처럼 내리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