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제목, 언어술사의 마법 상자
[시 창작 에피소드 #4]
이런 어둠은 처음이지?
가족이 저녁을 먹는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자기 앞에 놓인 밥에 집중한다. 각자 하루 일을 말하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막상 식탁에 앉으니 도무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겨우 말을 꺼내더라도 '중얼거리는' 속도다. 한 사람이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을 쳐다본다. 그/그녀의 얼굴에 가벼운 표정이 스친다. 그렇다고 해서 그 '표정'을 읽을 수는 없다. 그/그녀의 표피가 무척 어둡기 때문이다.
저녁이 맹렬하게 쏟아졌다 코를 중심으로 뚜렷한 굴곡을 갖춘 얼굴들이 식탁에 앉았다 음식을 씹거나 TV를 본다 이런 어둠은 처음이지? 모든 얼굴들이 춘자를 쳐다보다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먼지가 겹겹이 쌓인 물병자리가 커튼에 가려진다
─ 박성현, 「회색의 식탁」 전문
그/그녀는 식탁을 덮은 조명을 쳐다보다가 그 빛 너머에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것을 알아챈다. 이런 어둠은 처음이다. 그러나 그/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다. 한 사람이 무릎에 힘을 주고, 자신이 먹은 그릇을 챙겨서 싱크대로 간다. 한 사람은 그/그녀의 종종거리는 걸음을 보다가 눈을 거둬들인다. 가장 먼저 식탁을 벗어난 사람은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의 붉은 버튼을 누른다. 아직 식사를 끝내지 못한 사람은 언제 식사를 끝내야 할지 궁금해 하지만, 이 어둠은 가을 모기처럼 끈질기다.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모든 얼굴들이 현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시 묵묵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일에 집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