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야기들
새가 날았다, 비가 그치고 있다
새가 날았다. 그 희고 창백한 날개로 공중을 휘저었다. 새의 입장에서 '난다'는 것은 생활이다. 날지 못하는 나는 그 생활이, 그 진화와 실존이 부럽다. 뼈만 남은 내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고, 그것이 하나의 깃털이 될 때까지 나는 태양의 모서리를 걸어야 한다. 언덕을 오르는 짐승들의 그림자를 파고들며, 또한 그 소름끼치는 울음을 참아가며 나는 이끼로 뒤덮인 구름의 숲을 헤매야 한다. 나는,
나는,
신의 막다른 골목
신을 먹는 자
전쟁과 기근은 끝없고
지진이 해일처럼 일어나 대륙을 덮었으니
이것은 이야기가 아닌 현실
그러나 이야기가 아니면 마주할 수 없는 현실
울음의 까마득한 지평선으로
밤이 내려앉았을 때
마침내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은 이어졌네
숲은 피를 흠뻑 마시고 끈적끈적한
빛을 토해냈으니
그때 얼어붙은 발목을 날갯죽지로 감싼
새 한 마리
눈이 먼 채 숲속을 배회하는
- 박성현, 「새의 입장」( 계간 <가히>, 2023. 여름호)
어떤 의미에서, 생명이란 신을 먹어야만 하는 숙명을 가졌다. 물론 신이란 손으로 만지거나 냄새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인간적 형태'의, 혹은 4인칭에 가까운 그것이 아니다. 신은 도처에 있고, 만물에 깃들었으며, 단지 우리는 신을 먹으며 나누는 것이다. 신이 그러하다면, 산 자와 죽은 자의 시간은 다르지 않다. 펼쳐졌고 이어져 있으며 포개진다. 지금 우리는 이야기가 아니면 마주할 수 없을 만큼의 참혹한 현실을 지나고 있다. 전쟁과 기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변질된 종교, 테러,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단지 당신이 마주한 것은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러나 피를 흠뻑 마신 숲은 끈적끈적한 빛을 토해내고 있다. 얼어붙은 발목을 날갯죽지로 감싼 눈먼 새 한 마리, 날아오르기 직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