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야기들
북해로 향하는 급행열차
내가, 나의 육체로 더 이상 살 수 없을 때가 반드시 온다. 그것은 원근처럼 구체적이고 태양과 달이 낮과 밤을 분할하는 것만큼 분명하다. 나는 매일 메마르면서 심장과 호흡과 울음을 소진시키고 있다. 언젠가 텅 빈 주유구처럼 가솔린이 바닥날 것이다. 그것 또한 너무 사소해서 나는 해변을 걷다가 잠시 꿈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나는 북해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오른다.
나는,
흰 파도가 가른 바다처럼
가파르게 갈라졌다
기억과 육체도 쪼개져
쓰레기처럼 떠밀려 다녔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나는,
나는,
알고 있었을까
일인용 식탁에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 아내도
아내를 바라보던 나도
나와 아내가 묻었던 수줍은 강아지도
파도가 갈라놓은 흰 바다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죽음을 중지하라는
유월의 요구가 북해로 향할 때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나는,
- 박성현, 「유월의 요구」 (계간 <미래시학> 2022년 겨울호)
유월에 나는 북해로 향했다. 그곳은 멀고 가파르고 사나웠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고 능선 몇 개를 넘고서야 해무(海霧)가 고여 있는 항구에 도착했다. 새벽 출항을 마친 사람들이 욕지거리 같은 허기진 말들을 내뱉었다. 술에 취했어도 사람들은 정확히 자기가 타야 할 배를 찾아냈다. 항구 뒤쪽으로 얕은 숲이 있었지만, 대부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일찍 찾아온 폭염에 바싹 말라 있었다. 겨우 열매를 맺은 나무는 썩었거나 거미줄이 쳐 있었다. 손을 대면 목부터 부러졌다. 유월에 나는 쓰레기처럼 떠밀리며 북해에 갔다. 유월에 나는 바다와 육지로 갈라졌다. 유월에 나는 기억과 육체로 찢어졌다. 유월에 나는 삶과 죽음을 꿰메지 못했다. 죽음을 중지하라는 유월의 요구에도 나는 내게서 멀고 가파르고 사나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