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의 시
박성현
어느 날 새가 날아와 호흡을 지워버렸다 또 다른 날엔 볕이 뜨거워 혀와 말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당신의 손을 잡기도 전에 얼음으로 뒤덮였으니 나는 또 까마득히 물러나야 했다 당신은 내가 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이름, 나는 나를 잃어버린 채 당신이라는 도시를 걸어야 했다 나는 당신을 걸었다 눈과 입이 없어 당신의 웃음과 발자국이 들리지 않았지만 내게 닿는 바람과 햇빛과 언덕을 당신이라 확신하며 걸었다 나는 지나가버린 날씨, 어디에도 없는 바람 어느 날 당신을 바라보는데 새가 날아와 두 눈을 뽑아버렸다 나는 주섬주섬 눈알을 찾아 붙이고 다 타버린 말들을 이어가며 나는 당신을 걸었다
계간 시인시대 202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