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현 Aug 28. 2024

갈매나무에 뒤엉킨

수요일의 시


갈매나무에 뒤엉킨               


박성현




당신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백 년 만이라 얼굴조차 가물었습니다 

녹슨 현관 열어 두고서 

옥상으로 난 초록 계단에 앉았습니다

달이 구름에 가려 반쯤 지워졌습니다 

반쯤 지워진 달이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갈매나무에 뒤엉킨 바람을 풀고서는

꼭 멀리 가는 아버지 표정으로 

나를 뒤척였습니다 

혼자 비탈에 올랐습니다 

가풀막이 심해 성긴 흙이라도 단단히 밟았습니다

녹슨 철근보다 무거운 젖은 재의 냄새들이 풍겼습니다 

반쯤 지워진 달이 산마루에 걸쳐 있었습니다 

너무 희미해서 그림자가 모조리 빠져나갔습니다 

계단에 앉아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은 차갑게 식으며 서서히 물러갔습니다 

폭설을 삼키며 비탈을 내려갔습니다         









웹진 <님> 2022년 겨울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