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나 써라

서문

by 박성현

나는 산문을 많이 쓴다. 입원 전에도 발표한 시보다 산문과 평론이 더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느 시인은 자신의 시에 영향을 줄까봐 아예 산문 쓰기를 배제한다. 물론 시와 산문의 균형을 맞추면서 자신의 시 세계를 확장하는 시인도 많다. 나의 경우는 기울어져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하지만 지나치지 않는다면, 산문을 씀으로써 나의 시가 표류하지 않는다면 굳이 따라할 필요는 없다.

내가 이 사소한 비밀을 꺼낸 이유는, 불편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3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명치 끝을 뒤채는 기억.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내 시를 읽은 한 선배가 내게 ‘너는 소설이 어울린다’고 지적한 적이 있었다. ‘소설이나 써라’는 얘기다. 한동안 집 잃은 개처럼 살았다. 그리고 결론: ‘그건 그의 입장이야.’ 나는 끝내 그의 말을 자르고 상자 속에 가뒀다. 하지만 여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심장 어귀를 여전히 맴돌고 있다. 이것이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의 원초척 경험이다.

나는 시를 쓰면서, 사물에 깃들어 있는 상처를 볼 때가 있다. 그 상처는 우리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는 시간의 몰락일 것이지만 언어가 새겨넣은 문신이기도 하다. 예컨대, 손때가 묻은 내 낡은 기타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하는 거냐?”라는 아버지의 불편한 힐난이 박혀 있다. 만일 이 기타를 소재로 시를 쓴다면, 내 시에는 아버지가 던진 그 말의 흔적이 어떤 식으로든 남아 있게 된다.

언어는 세계를 열지만, 반대로 ‘나’를 닫기도 한다. 언어는 그 열고 닫음을 통해 고유한 주파수를 만들어낸다. 그에 맞춰 나의 언어는 익명성을 씻어내고 일정한 폭과 무게를 가진 '문장'이 된다. 그것은 ‘나’의 언어가 문채(文彩)로서 펼쳐지는 순간이며 오로지 '나'만이 알 수 있다. 때문에 선배의 지적을 그의 몫으로 돌려버린 것은 정당하다.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예비 시인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그 말이 간과한 것이 있다. 마치 레몬 탄산수 같은 산문의 맛과 미네랄워터처럼 깨끗한 운문의 맛은 그 조합 자체만으로도 문장에 낯선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온몸에는 ‘시’로만 이뤄진, 순수한 문장이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자칫 나의 문장이 시가 되지 못할 수 있다는 충고를 정당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나의 장점이자 남들과는 다른 특징이라 믿는다. 그 특징은 내가 ‘시 쓰기’라는, 정해진 바 없으며 모호하고 불투명한 세계를 꾸준히 달리게 한다. 나는 작품의 힘을 믿는다. 창작의 궤도에 올라선 ‘작품’은 엄청난 내적 추진력을 스스로 생성해내며, 그 자체로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단거리 선수가 이끌어내는 관성과도 같은 힘 말이다. 선배 시인에게 직접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며 오로지 책과 사물을 통해 시를 받아들이고 시 쓰기를 꾸준히 이어왔으므로, 나의 문장은 사물 속에 편재(遍在)한다. 도처에 시가 있다는, 도처가 문장이라는 나의 충실한 믿음과 함께.

사물에 대한 산문의 가시성은 오히려 사물을 투명하게 여는 열쇠일지 모른다. 그리고 시를, 시의 내부가 아니라 바깥에서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때문에 나는 사물을 응시하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요컨대, 사물을 ‘사물-스스로’ 여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 나는 오늘의 문장이 나의 마지막 언어일 것이라는 각오로 쓴다. 문채(文彩)가 문장을 쓰는 습관이며, 지문처럼 고유의 문양을 가진 것이라면, 나의 그것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그러니 그것조차 문채다. 나는 불처럼 일어났으나 다만 형체를 거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