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제1장 시 창작 단상

by 박성현

A4에 첫 문장을 입력하기 전에, 과연 나는 왜 컴퓨터를 켰는지, 이 글을 왜 써야 하는지, 그것은 어떤 효용이 있으며 또한 누구를 보살피는지 물을 때가 있다. 갑자기 멜랑콜리가 엄습한다. 심장을 타고 흐르는 농도 짙은 이물감이다. 경험상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시 쓰기에 ‘당위’를 덧칠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 때문이다.

확실히 본능적으로 쓰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쓰는 글은 오래 남는다. 글쓰기 습관이나 루틴은 여기에 맞춰져야지 어떤 사명감이나 당위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써야 할 이유가 있어서 쓴다는 사람을 보면 언제 무너질지 몰라 안타깝다. 그는 쓰기도 전에 이미 시를 완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그를 소진할 뿐이지 진정한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 물론 당위는 모든 글쓰기에서 가장 강력한 최음제다. 하지만 부작용이 더 크다.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시의 사막화는 시작되기 때문.

나는 시를 쓰지만, 써야 할 이유는 찾지 않는다. 시 자체가 ‘이유’이기 때문에 나는 그 시를 ‘설계’하고 어울리는 옷감을 찾아 그것을 ‘재단’하며, ‘편집’하면 그뿐이다. 시의 쓸모를 먼저 생각해서 문장을 적어나가면 어느 순간 ‘의도’가 개입되고 시는 오염될 수밖에 없다. 시인들은 문장 스스로가 눈을 떠서 자신에게 몰입하고 시인의 살과 뼈로 집요하게 파고들 때까지 쓴다.

나는 시를 쓸 때 가장 행복하므로 써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 행복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계속 앞으로 향하도록 만든다. 나는 쓴다. 무조건적으로, 일말의 후회도 없이. 비록 내 상황이 “나는 바닥 말고는 기댈 곳 없”을지라도, (그것은 지금-여기에 깃든 ‘내 몸’의 조건이다) 나는 내 몸으로 기우는 저녁과 함께, 그 멀고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바닥 말고는 기댈 곳 없었네

가파르게 바람이 불어왔네

내 몸으로 기우는 저녁이 쓸쓸했네

쓸쓸해서 오래 머물렀네

─박성현, 「저녁이 머물다」 부분


그러나 어느 순간 시 쓰기가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문장들이 주어를 찾지 못하고 너무 멀리 가 있거나 시퀸스들이 아무런 장면이나 의미도 갖지 못한 채 단지 안개 속을 부유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물을 너무 빨아들인 식물처럼 압도적인 무기력에 빠진다. 자판기에 얹힌 손에서 손가락이 튕겨나가고 문장을 바라보며 냄새 맡고 중얼거리는 눈과 코와 입은 뽑혀버리고 만다. 그러면 내 심장은 돌덩어리처럼 굳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내 삶은 어쩌면 죽은 문장들과 지낸 시간들로 채워져 있다는 비명, 내가 지워버린 기억들에 파묻혀 질식하는.

하지만 이 절망감은 나를 위한 시 쓰기에 수반되는 그림자다. 사랑이 연인의 몰락이라는 감정을 배제할 수 없는 것처럼, 고통과 외로움과 빙하 속에 갇힌 듯한 이 쓸쓸함과 함께 살아야 한다. 나는 견뎌왔고, 죽을 때조차 이 불편한 감정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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