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굴사, 조선호텔, 노을해안, 차귀도 낚시, 풍차해변
< 4. 30. 일 >
아침 7시까지 딸 숙소로 간다.
손녀는 눈을 뜨지 못하고 나온다.
어제 뽀로로와 진하게 논 탓일 것이다.
8시 30분 비행기로 나간다니 좋다, 너무 좋다.
큰딸은 나가고 아들은 어젯밤에 들어왔다.
집을 그냥 제주로 옮긴 것뿐이다.
피곤하다면서도 아내는 입이 귀에 걸렸다.
브로콜리처럼 생긴 제주시의 가로수는 바로 먼나무.
곶자왈에서 보았던 녹나무는 집에는 심지 않는단다.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 조상님들이 제삿날 집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란다.
나무를 신성시해서, 집을 지을 때도 베는 경우는 없다.
동네마다 모시는 신이 따로 있다니 어찌 보면 일본과 많이 닮았다.
둘째가 거하게 쏘고 싶다며 조선호텔에 예약했다.
시간이 조금 남으니 가는 길에 산방굴사를 보고 가잔다.
화창한 날씨에 시계(視界)까지 좋다.
용머리해변 형제섬 송악산 가파도 더 멀리 마라도까지 훤하다.
가져온 옷 중 제일 폼나는 것으로 차려입었다.
카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산방산은 제주도를 만든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봉우리를 뽑아 던져 떨어진 곳이란다.
정상의 둘레와 같고 백록담의 깊이만큼 높이가 되고, 제주도의 오름들과 다르게 분화구가 없어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입구에 동쪽으로 등지고 앉아계신 큰 금불상이 있는 곳은 보문사다.
입장료가 무료라고 크게 써 놓았다.
산방굴사보다 늦게 생기기도 했고, 산방굴사가 입장료를 받는다는 불만이 많아 차별화한 것 같다.
어떻게 일요일에만 절에 오는지, 분명 의도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게시를 받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음 주 일요일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판단하겠다.
산방굴사로 가는 돌계단을 오르며 아내는 자꾸 쉰다.
내일 백록담에 가야 하는데, 큰일 났단다.
열심히 몸을 만들었는데 이틀 손녀에 진이 다 빠져버린 것이다.
굴 천정에서 떨어지는 약수를 받아먹고 힘을 내보자.
“산방덕 전설
옛날 산방덕이란 여신이 있었다.
어느 날 인간 세상을 보다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 고승이라는 총각에게 그만 마음을 주고 말았다.
그래서 산방덕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서 고승과 혼인하였다.
고승과 산방덕은 힘든 줄 모르고 농사 일을 했으며, 서로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아 깨소금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둘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산방덕의 미모에 흑심을 가진 관리가 남편 고승을 강제로 섬 밖으로 쫓아버렸기 때문이다.
산방덕은 인간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산방굴사에 들어가 커다란 바위가 되었다.
그 비위는 남편을 그리면서 서러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고여 천장에서 떨어지는 석간수가 되었다.
지금도 그 눈물은 마르지 않고 샘이 되어 떨어지고 있다.
샘물을 세 모금 마시면 사랑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6년의 생명을 연장받는다.
산방굴사 앞에는 두 사람이 살던 마을을 향해 서 있는 나무가 있다.
그곳에서 매일 아이를 갖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기 때문에 지금도 지극정성으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하는 소리가 낭랑하다.
굴 안 부처님께 치성을 드리고, 천정의 물을 받아 마셨다.
돌아 계단을 내려오는데 스님이 등 뒤엔 전기난로를 켜놓고, 무릎에는 방석을 덮고 꾸벅꾸벅 졸고 계신다.
옆에 보살님은 신혼부부의 소원성취 글귀를 초에 세기고 계신다.
녹음 된 염불 소리는 목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조선호텔 뷔페.
연어, 참치, 단새우까지 싱싱한 회의 잔치다.
부채살, 채끝, 양갈비, 돼지 수육까지 펄펄 날뛴다.
생고기, 전복에 중국식 인도식까지 처음 본 요리가 듬뿍.
아직 고정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뜨내기 보따리 장사로 고생하는 둘째의 땀을 생각하면 눈물로 먹어야 하는 밥이다.
진득하게 2시 30분을 꽉꽉 채운다.
대정 노을해안을 달린다.
지나치는 건물의 상호들을 외울 것 같다.
제주 여행은 차로 다니는 시간이 훨씬 많다.
배로 들어오기 전 가득 채운 차의 기름은 3일을 넘지 못했다.
한라산을 가운데 두고 빙빙 도는 일정이다.
갈 때마다 돌고래에게 헤엄을 치게 하는 설문대할망에게 고마울 뿐이다.
차귀도 달래 배낚시 체험.
오후 4시 30분에 항을 출발한다.
차귀도를 향해 곧바로 나가는 배를 파도가, 집채만 한 파도가 삼킬 것 같다.
아들, 둘째까지 데리고 나왔는데 후회막급이다.
부두에서 기다리는 아내여, 큰딸이라도 잘 챙겨줘.
차귀도 코앞에서 닻을 내리고 낚시를 시작한다.
바늘이 붕어낚시보다 작다.
콩알만 한 녀석들 몇 마리 잡아보다 가자는 말.
아들은 골이 단단히 났다.
다행히 둘째는 한 마리라도 손맛을 보았다.
저녁 밥상에도 못 올라갈 어랭이 몇 마리.
일행 중 젊은 남편은 배가 출발한 지 10분도 못 되어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결국 눈알을 뒤집고 눕는다.
배만 타면 저 모양이라고, 쳐다보는 부인의 눈초리가 사납다.
아저씨 무조건 배는 잘 타야 합니다.
신창 풍차해변
첫날 바람 때문에 포기했던 구간이다.
중간쯤에 김대건 신부님의 표착기념관과 성당이 있다.
누운섬(옷 벗고 표류하는 여인상) 대섬 지실이섬이 잘 어우러진 차귀도가 바다 위에 한가롭게 떠 있는 풍광이 압권이다.
아담한 성당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녁 햇볕이 따뜻하다.
“표착기념관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포구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이며 103위 순교성인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가 1845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로 귀국하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착했던 곳이다.”
해가 점점 바다로 떨어진다.
기왕 나선 김에 일몰까지 보고 가자.
사람들이 다 이곳으로 모였나 보다.
바다를 향해 카메라를 설치하고 바라보는 시선들.
보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은 내일로 미루지 말자.
내일이 또 온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나.
사는 대로 살아보자.
밤 8시 30분, 너무 늦은 귀가다.
내일은 백록담을 올라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