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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은 초록

빕스, 오설록, 화순방파제

by 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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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8. 금 >

넓다고는 하지만 온 식구가 함께 하루를 보내고 나서, 아내는 곰곰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이 키우느라 고생한 큰딸 부부를 위해 따로 숙소를 잡아주자고.

낮에는 손녀를 우리가 봐주고 오랜만에 편하게 여행이라도 하라고.

예약한 집으로 가는 길은 금방 마지막 골목이 될 것 같으면서 다시 새 길이 나타나는 곡예다.

시내의 좋은 호텔을 잡아줄 것을 후회한다.

굳이 그렇게 해야겠느냐는 사위와 나.

여자들은 복잡해.

아이 키우는 일은 주로 여자 몫이니 딸의 심리를 제일 잘 아는 것은 친정엄마겠지.


공항이 내려다보이는 9층, 빕스.

바지락볶음, 가리비찜, 연어회, 오리훈제, 와인.

나머지 셀러드는 여자들이나.

어제부터 아내의 씀씀이가 헤프다.

온 가족이 근사한 점심을 먹는다.

얼추 상당한 금액일 텐데.

알려고 하지 마라, 알아도 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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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방파제로 간다.

낚시하면 꼬박 죽는 아들을 위해.

우리는 차와 쉼이 있는 오설록.

제3주차장까지 차가 빽빽하다.

차는 있으나 쉼은 애초에 글렀다.

오래 기다리다 받아온 녹차음료는 이미 물렁해져 시원하지 않다.

가지런하게 쭉 뻗은 녹차밭에서 찍은 사진은 잘 나온다.

화면에 잡히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좀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손녀는 더 깊은 곳으로 가자고 막무가내로 내 손을 끈다.

유모차를 제가 끌겠다고, 뒤에서 몸을 올려서 잡아주란다.

뙤약볕에 날 고생.

건강한 것은 좋다만 고집은 좀 부담스럽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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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 길게 그려졌고, 화려한 붉은 색을 띤 줄도화돔이 넣기만 하면 나온단다.

둘째도 위험한 테트라포드를 넘어 도전이다.

금방 두 마리가 함께 딸려 나온다.

손바닥 크기도 안 되니 부지런한 고양이만 좋은 일이다.

산방산 그림자가 포구에 내려앉은 아름다운 화순항.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진다.


여기까지 와서 가족이 떨어져 있는 것이 못마땅한 사위.

그래 맥주 파티를 하자.

편의점에서 장을 보고 큰딸의 숙소에 둘러앉았다.

설문대할망, 오백나한, 차귀도, 오름의 명칭들에 대해 둘째는 열강하고 있다.

내일 갈 곳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빗방울이 날린다.

내일은 종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제주는 넓고 놀 곳은 많고 많다.

아이고 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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