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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새로운 모습

약천사, 은희해장국, 금오름, 우유부단, 협재해수욕장

by 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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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3. 일 >

가는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제일 젊은 날

사는 게 별거냐?

오늘이 제일 재미진 날

근사하고 폼나는 것 많지만

오늘 본 것이 제일 멋진 것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먹고 느끼는 것

다 합쳐도

딱 꽂히는 육감만 못하지

발길 닿는 대로 갈래

맘 가는 대로 그냥 둘래


오늘은 더 춥다.

그래도 옷은 어제저녁 코디한 대로 밀고 나갈래.

바람도, 흐릿한 하늘도 중산간 애월의 일상이라는 걸 눈치챘다.

어제보다 30분 빠른 8시.

staff라 써진 목걸이 명찰을 달고 숙소 로비를 청소하는 할아버지.

주일 낮 예배 : 낮 11시

주일 저녁 찬양 예배 : 오후 7시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다.

혹시 만민 어쩌고 새로운 세상 어쩌고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있는 곳은 아닐까?

아침에 나갔다가 해 질 무렵에 들어오는 우리만 모르는 세상이라도 있는 걸까?

소설을 쓰고 있다, 아주.


1135번 국도로 중산간을 신나게 달려 36분 만에 서귀포로 왔다.

바람은 살랑살랑, 감촉은 차갑지 않다.

한라산이 또렷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미세먼지도 걱정 없겠다.


약천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귤나무 길을 따라 내려간다.

주먹보다 큰 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감꽃보다 작은 하얀 꽃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고 있다.

옆 모습부터 보여주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약천사 대적광전.

카메라 렌즈에 다 잡히지도 않는다.

처마의 섬세한 단청이나 창살 문양이 선명하고 치밀하다.

높이만 보면 얼마 전 다녀온 베트남 바이딘 사원하고 씨름하면 누가 이길까?

아마 비등비등하겠다.


발길을 왼편으로 돌리니 굴 법당이 보인다.

사철 마르지 않고 병을 낫게 했다는 약수가 솟는 암자.

비구니 스님이 부처님 석불 아래 동자승이 그릇을 아래로 내미는 연꽃 모양의 자그마한 연못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있다.

얼굴은 왜 저렇게 어두울까?

바가지를 잡은 새끼손가락은 왜 저렇게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펴져 있을까?

석굴 안 법당 부처님 앞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아내 옆에서 나는 계속 그 생각만 하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광명의 부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큰 법당.

무려 30m의 국내 최대 목조 불상.

세종의 아들 문종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위패가 모셔져 있단다.

1982년에 혜인스님이 중건하셨다는데 수완이 보통이 아니시다.

1만 8천의 부처님을 모셨다는 2층으로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른다.

3층까지 뻥 뚫린 법당을 감고 금물을 뒤집어쓴 부처님들이 모셔져 있다.

모양이 다 똑같다.

조금 늦더라도 부처님 한 분 한 분 비슷하게라도 정성을 들여 만들어 모셨으면.


염라대왕보다 무섭게 생긴 할머니 비구니 스님.

“가족 축원 촛불을 켜보세요.”

좀 빈정사납다.

“일요일인데 성경 냄새나는 자들이 절을 찾아 고맙다.” 하실 줄 알았는데.

부처님이 무슨 죄인가.


발 가는 곳마다 나무에 걸린 부처님 말씀.

“온 곳을 모르면서 갈 곳을 안단 말가.

올 곳 갈 곳 다 모르거늘

동서남북 안다고 지혜라 하랴.”


“올 때 빈손인데 갈 때 가져가랴?

올 때 갈 때 다 빈손이거늘

재물을 움켜쥐고 안 떠날 얼굴일세

사람이 모든 걸 안다 하나

자기를 모르네.”


“신의 또 다른 이름은 자비입니다.”


“아미타불이 어디 있는가?”


“나는 왔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체

나는 살고 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른 체

나는 죽어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달 뜨며 지며 세월을 재촉하고

해 뜨며 지며 늙음을 재촉하네.

명예와 재물은 아침이슬이요.

고통과 시름은 저녁연기인 것을

지금 그대에게 간절한 것은

부질없는 걸 내려놓고 마음 닦는 길.

금생에 이 말을 소홀히 들으면

오는 생에 그대는 한탄뿐 이리.”


“백 년 동안 쌓은 재물

하루아침 티끌이요

삼 일 동안 닦은 마음

천년 가는 보배로다.”

“성내는 것은

짧은 정신병이다.”


사리탑을 돌아 나오는데, 비릿한 밤나무 꽃냄새가 코에 닿는다.

주변을 보니 밤나무처럼 생긴 나무에서 수술을 단 꽃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절에서는 안나야 할 냄새라 했더니,

아내는 절에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이라 한다.

아! 한 방 제대로 먹었다.

공연히 삐딱한 생각으로 주차비도 받지 않는 약천사를 빠져나오며 생각한다.

힘들더라도 절대자를 모시는 성전을 쌓는 것이 먼저냐?

지금 힘들어하는 중생을 위해 밥 한 끼를 보시하는 것이 중 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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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거리의 중문 오일시장으로 가는 입구 로터리의 은희네 해장국(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516로 84)

와! 줄 서는 팀이 여럿, 24시간 영업한다는데.

먼저 나오는 계란을 힘차게 깬다.

생것이다.

모처럼 서비스하겠다는 나의 배려심이 와삭 깨진다.

평소에 하지 않는 일을 하는 데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된장이 은근한 채수가 기본이다.

달착지근한 배춧잎과 콩나물이 듬뿍.

파 송송, 얇게 썬 소고기, 선지도.

깔끔한 국물을 마시다, 숨을 들이쉬면 밥이 부른다.

된장에 찍은 매운 청양고추를 한 입 깨물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여기서 사람 몇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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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우글거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중에 있는 금오름.

공사 중인 화장실에 들른다.

언제나 기저귀를 뗄까?

환갑이 넘었어도 제일 힘든 일이 바로 맘대로 안 되는 뽑는 일.

깔끔하게 단장한 시멘트 길을 부드럽게 구부러지며 오른다.

오르내리는 많은 사람.

주변이 환한 조망.

한라산도 멀리 수월봉, 비양도까지 다가온다.

백록담과 가장 닮았다는 분화구에는 물이 고여있다.

차가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니 노을을 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아이들과 수학여행 때 들렀던 이시돌목장이 근처다.

가자, 네비에 찍고.

함평인가? 세 자매가 제주도에 와서 말을 키우면서 운영한다는 우유부단 카페.

아이스크림이 진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입소문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금악마을 꿀봉(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2124-3.)

백종원님의 손길이 많이 간 골목식당.

모양도 그렇고 음식의 맛도 예사롭지 않다.

가게 앞 나무 밑 의자에 앉아 캔맥주와 함께 먹는 돼지강정 맛이란.

포장해서 가는 사람도 많다.

주변에 타고, 파스타, 라면, 커피집도 있으니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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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 이르다.

협재해수욕장으로 가자.

바람이 몸을 날린다.

모래가 날리는 해변을 비양도를 바라보며 가다 돌아선다.

사람들로 꽉 찬 해변.

주말이라 여행객들이 많다.

서핑하는 젊은이들이 점령한 제주도 해변.

나도 한 번 해봐?


도로를 한 참 내려와 찾은 제주설심당(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1721-1 1층)

설빙과 맛이 너무 똑같다.

심지어 그릇까지.

2014년에 생겼다니, 어쩌면 설빙보다 먼저일지 모른다.

돈 있는 놈들이 다 가져가는 세상, 그래도 끄떡없이 버틴다니 박수.

그냥 나 혼자 생각.


근처의 곽지해수욕장까지 둘러보고 집으로.

내일은 우도를 간다는데,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단다.

며칠 되었다고 기억들이 가물가물하다.

오늘은 일찍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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