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방진, 비자림, 아부오름, 바람벽에 흰 당나귀, 동문시장
< 4. 24. 월 >
성산 일출봉을 들렀다 우도에서 하루를 보내려면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일요일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아침 6시 30분.
마당이 젖어있다.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일기예보도 종일 비다.
기왕 일어났으니 성산으로 가보자.
오늘은 빡빡이 총각이 로비 입구까지 차를 올려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여기에 어깨 형님이 주무신 것일까?
오늘은 내가 영화를 찍는다, 너무 나간다.
1136번 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린다.
공항 근처쯤 왔는데 119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는데, 앞쪽에서 멈춘다.
차선을 바꿔 빠져나가는 차들을 따라가는데, 차 2대가 비스듬히 반대 차선을 차지하고 있다.
앞차는 뒤꽁무니가 앞차는 코가 작살났다.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고 있는 총각, 얼굴빛은 울그락불그락.
벌벌 떨며 빨간 옷 소방관에게 뭐라고 이야기하는 처자.
둘 다 번호판이 ㅎ으로 시작한다.
차를 빌리고 신나게 여행을 시작하려다 큰 낭패를 본 것이리다.
내 일은 아니지만 갑갑하다.
앞 유리창에 흐르는 빗물.
심수봉의 슬픈 목소리에서는 눈물 냄새가 난다.
시내는 어디나 막힌다.
김녕을 지나면서 해안도로로 내려간다.
제2공항 반대라는 깃발을 펄럭이며 차들이 오고 있다.
앞뒤로 경찰차가 호위하는 것으로 보아 은근히 관도 동조하는 것인가?
오름 20여 개가 없어진다니 나도 반대다.
제주도는 이대로 더 크지 않도록 놔두자.
20년도 훨씬 지난겨울.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다 만난 세화전통시장(5, 10일 장날)이 보인다.
일출봉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돌고 마지막 일정이었지.
집사람 엉덩이는 까져 안장에 제대로 앉지도 못했었다.
바다를 보며 사람 하나 없던 길.
조그마한 하우스 지붕에 해녀의 집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땅을 좀 사놓을까 웃으며 이야기했었는데, 그랬더라면 지금은.
다 부질없는 일, 그만한 돈이 있기나 했나.
별방진.
우도로 진격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중종 때 쌓았다는.
100년 전 일로 ‘무릎 꿇어라.’ 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도 있는데.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했지, 누가 무릎을 꿇으라 했나?
바람에 날릴 것 같은 성 위에서 바다에 나타나는 왜구를 생각한다.
비옷을 입고 올레길을 걷는 사람.
허벅지가 팽팽하게 화를 내도 더디게 가는 자전거 일행.
빗발은 굵어지고 바람은 세지는데 내 맘이 더 답답합니다.
평대리가 보이고, 우도와 지미오름이 보이는 성산봄죽칼국수집.
주차장에 차들이 빽빽하다는 말은 믿어도 좋다는 말.
보말죽, 새우칼국수, 흙돼지덮밥, 한치향당근잎전.
어디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계산까지 키오스크로 해야 하니, 기계를 좀 다룰 줄 알아야 한다.
드라마 ‘런’의 한 장면을 찍었다는 자리는 천신하기 힘들다.
어린 처자들에게 다 주자.
사진 찍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에게.
천년 숲 비자림으로 가자.
주차장이 난리다.
비 오면 숲이라고 하더니 알 것 같다.
귤색 비옷, 우산 행렬을 따라 걷는다.
신기록을 세우려는 아내의 꽁무니를 숨도 못 쉬고 따라간다.
나무의 키도 덩치도 어마어마하다.
천년을 넘게 살았으니 저만큼은 해야지.
아마 신라의 패망도 보았을 것이다.
사랑 나무(연리지)도 있고, 처음 보는 이름을 달고 있는 나무도 있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며 따라가다 배에서 난리가 나 뛰었다.
아마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느라 고생 좀 하겠지.
이제는 아부오름으로 가잔다.
마을의 앞에 있다 해서 앞 오름.
아버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모습이라 해서 아버지 오름.
높이가 무려 301m이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야자수잎 매트가 쫙 깔려있다.
오르는 계단도 미끄럼 방지 틀이 말끔하다.
“삐쩍 삐쩍”
다리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새.
“삐쭉 삐쭉”
뭔가 삐진 새.
아내와 난 같은 새 말을 듣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정상까지는 쉽게 올랐는데,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데는 무려 1.5km.
금오름보다 넓고 깊은 분화구.
분화구 안에 왜 나무를 심었느냐고?
나무의 크기로 보아 오래전 일인데, 오름이 주목받을 줄 누가 알았나?
동네 어르신 들의 죄는 없습니다.
쉬엄쉬엄 보냈는데 시간은 오후 1시.
고민 또 고민, 차라도 한잔 마시자.
뷰가 끝내주는 김녕 해안 모알보알(거북이 알이라는 말로, 필리핀의 어느 섬 이름)
칸막이도 등받이도 없다.
바다로 달려 나간 바위의 모습은 사진 찍기에 좋은 구도이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차를 마셔야 한다.
앉지도 않고 나가는 내 또래의 사람들.
함덕해수욕장 쪽으로 조금만 가면 나타나는 바람벽에 흰 당나귀 카페
말차빙수가 최고 맛있는 집.
바다를 향한 뷰가 너무 멋있다.
아마 해안초소를 개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나귀 그림과 백석의 시가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시를 무척 사랑하는 사장님일 것 같다.
바람만 아니면 옥상에 올라 노을까지 사진에 담고 가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문시장을 들른다.
흑돼지김치말이, 왕오징어구이, 어묵 떡볶이. 딱새우회.
오늘을 돌아보며 대단하다고.
내일은 어디로 갈까?
밤은 무척 빨리도 깊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