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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손잡고 1
01화
첫 대면
2024.03.04. 월
by
고주
Mar 17. 2024
<첫 대면>
한 달은 살아야 할 짐
어깨를 누르는 묵직함
발뒤축에서 앞꿈치로 힘을 옮겨가며
쉬엄쉬엄 가도 15분
조카 둘이 나왔다는 호랑이 동네 명문중학교
부장은 처음이라는 그것도 학생부장님은
업무 파악에 업무 나누기에
엉덩이를 의자에서 뗄 수 없어
오줌까지 삭히고 있다
의욕은 하늘을 찔러 보름 동안
교문에서 학생 맞이를 하겠다고
그럼 그래야지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10년 몸으로
느꼈던, 지금은 학생 기획이
후문은 책임지겠다고 나선다
학교는 아파트에 묻힌 섬
아빠는 아들과 아들 친구를 문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을 엄마가 또 동영상으로 담는다
뽀얗게 볼이 분홍 꽃 핀 이쁜 짧은 치마
3학년이 되었다고 웃음꽃 달고 다가오는 섬 머슴
아이 손잡고 학교로 들어서는 특별 학급 반 엄마
두 겹 턱을 덜렁거리며 뒤뚱뒤뚱
늦을수록 느긋한 세상 편안한 영혼
나만큼 머리에 늦은 눈 내려앉은 아저씨가
처음 오신 학교 지킴이시냐고
수학 교사라는 말에 화들짝 감사의 고개를 숙이는
교장선생님
작년까지는 후문에서 맞이하지 않아서일까?
겁나게도 반갑게 헤픈 아침 웃음
세분의 지킴이 선생님 관리는 내 몫
등교 시 교통지도, 외부 손님 안내,
쉬는 시간 순회, 방황하는 아이들 쓸어오기,
하교 지도
주는 돈은 몇 년째 그대로인데
해달라는 것은 자꾸 늘어난다며 투덜투덜 고참 지킴이 선생님
쉬지 않고 손을 놀려 줍는 쓰레기
새 학기 힘내시라고 교장 선생님 보내주신 떡이 책상에서 멀뚱멀뚱
입학식, 담임 시간, 학교폭력예방교육, 건강교육..
언 동태처럼 빳빳해진 신입생
남녀 반반 15명씩 한 반에 30명
발톱을 숨기고 있겠지?
화장실 공사를 마치려면 한 달은 더 기다려야
건물 끝까지 뛰고 또 뛰어
점심은 학생들에겐 교실까지 배달된 음식 수레
휴게실을 빌려 밥상을 받는 선생님
특별반 아이들 8명이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얌전하게 자리를 잡는다
순하고 반듯하게 생겼는데
점심 후 기다리시던 교장선생님과의 차 담
귀가 접히면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는
자꾸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하는 이야기마다 걱정 두 말
갑자기 병가가 생겨 선생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혹여 한 달의 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겠다고
하도 사정하기에 못 이기는 척 그리하마고
자전거로 등교하는 녀석들이 딱 셋
축구하는 녀석 몇이 다섯 시가 되자 모두 퇴장
엄마 입김이 세다고 했거늘
<보았다>
영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언 아침에도
이 악물고 기다리는 산수유 꽃눈을
보았다
긴긴 겨울방학 끝내고 오는 첫날
지루함보다 설렘에 가까운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았다
너무 오랜만에 해보는 일
절대 짐은 되지 않겠다는 맘을 읽은
양말을 뚫고 나와 먼저 뛰는 발가락의 각오를
보고야 말았다
바빠서 너무 바빠서
화장실 가는 것까지 잊어버렸다가
꼬깃꼬깃 접힌 그 녀석의 짠한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도서관 가득 쌓인 책 틈에서
왜 이제 왔느냐고 부르는 시집을
그나마 보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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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호랑이 손잡고 1
01
첫 대면
02
살아야지
03
알아가기
04
시험
05
댄스반
호랑이 손잡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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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신으로 모시는 고주망태입니다. 36년의 교직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은 영원한 청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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