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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

2024.03.04. 월

by 고주

<첫 대면>


한 달은 살아야 할 짐

어깨를 누르는 묵직함

발뒤축에서 앞꿈치로 힘을 옮겨가며

쉬엄쉬엄 가도 15분

조카 둘이 나왔다는 호랑이 동네 명문중학교

부장은 처음이라는 그것도 학생부장님은

업무 파악에 업무 나누기에

엉덩이를 의자에서 뗄 수 없어

오줌까지 삭히고 있다

의욕은 하늘을 찔러 보름 동안

교문에서 학생 맞이를 하겠다고

그럼 그래야지

제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10년 몸으로

느꼈던, 지금은 학생 기획이

후문은 책임지겠다고 나선다

학교는 아파트에 묻힌 섬

아빠는 아들과 아들 친구를 문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그것을 엄마가 또 동영상으로 담는다

뽀얗게 볼이 분홍 꽃 핀 이쁜 짧은 치마

3학년이 되었다고 웃음꽃 달고 다가오는 섬 머슴

아이 손잡고 학교로 들어서는 특별 학급 반 엄마

두 겹 턱을 덜렁거리며 뒤뚱뒤뚱

늦을수록 느긋한 세상 편안한 영혼

나만큼 머리에 늦은 눈 내려앉은 아저씨가

처음 오신 학교 지킴이시냐고

수학 교사라는 말에 화들짝 감사의 고개를 숙이는

교장선생님

작년까지는 후문에서 맞이하지 않아서일까?

겁나게도 반갑게 헤픈 아침 웃음

세분의 지킴이 선생님 관리는 내 몫

등교 시 교통지도, 외부 손님 안내,

쉬는 시간 순회, 방황하는 아이들 쓸어오기,

하교 지도

주는 돈은 몇 년째 그대로인데

해달라는 것은 자꾸 늘어난다며 투덜투덜 고참 지킴이 선생님

쉬지 않고 손을 놀려 줍는 쓰레기

새 학기 힘내시라고 교장 선생님 보내주신 떡이 책상에서 멀뚱멀뚱

입학식, 담임 시간, 학교폭력예방교육, 건강교육..

언 동태처럼 빳빳해진 신입생

남녀 반반 15명씩 한 반에 30명

발톱을 숨기고 있겠지?

화장실 공사를 마치려면 한 달은 더 기다려야

건물 끝까지 뛰고 또 뛰어

점심은 학생들에겐 교실까지 배달된 음식 수레

휴게실을 빌려 밥상을 받는 선생님

특별반 아이들 8명이 선생님 세 분과 함께

얌전하게 자리를 잡는다

순하고 반듯하게 생겼는데

점심 후 기다리시던 교장선생님과의 차 담

귀가 접히면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는

자꾸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하는 이야기마다 걱정 두 말

갑자기 병가가 생겨 선생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고

혹여 한 달의 기간이 더 늘어날 수 있겠다고

하도 사정하기에 못 이기는 척 그리하마고

자전거로 등교하는 녀석들이 딱 셋

축구하는 녀석 몇이 다섯 시가 되자 모두 퇴장

엄마 입김이 세다고 했거늘



<보았다>

영하를 벗어나지 못하는 언 아침에도

이 악물고 기다리는 산수유 꽃눈을

보았다

긴긴 겨울방학 끝내고 오는 첫날

지루함보다 설렘에 가까운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았다

너무 오랜만에 해보는 일

절대 짐은 되지 않겠다는 맘을 읽은

양말을 뚫고 나와 먼저 뛰는 발가락의 각오를

보고야 말았다

바빠서 너무 바빠서

화장실 가는 것까지 잊어버렸다가

꼬깃꼬깃 접힌 그 녀석의 짠한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도서관 가득 쌓인 책 틈에서

왜 이제 왔느냐고 부르는 시집을

그나마 보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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