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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기

2024.03.06. 수

by 고주

<알아가기>


어깨에 담이 들렸다며 덥수룩한 머리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비틀고 들어오는 부장님.

내 그럴 줄 알았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다 서툴고 힘들지.

거기다 잘해야 하고, 잘하고 싶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라서 더.

병원에 가서 주사라도 맞으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산본에서 통증 클리닉을 운영하고 계신단다.

코앞 친구 집이 있는데 말도 못 꺼냈다.

최고의 명의가 친구라고 목에 힘도 주고, 학교 전체를 단골로 만들어 친구에게 면도 세울 절호의 기회였는데.

교문으로 터덕거리고 나가는 모습이 어째 짠하다.

“수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우리는 수학이라는 창을 통해 양, 구조, 공간, 변화 등을 탐구하며, 세상을 체계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한다.

수학을 아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고, 아는 만큼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아는 만큼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과서 머리말에 나온 말로 혼을 쏙 빼놓는다.

잘하는 놈들이 세상은 바꾸고 우리는 그냥 따라가면 안 되느냐고?

꼭 그런 심보로 불량하게 쳐다보는 놈이 있다.

되지. 물론.

근데 잘 따라가야지.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꽂는다. 시원하게.

제대로 된 줄인가 구분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

못 바꾸더라도.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기초부터 하나씩, 빈틈없이 쌓아 올리면 튼튼하고 아름다운 자신만의 수학 건축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고 쉽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여기서 질문한다.

혼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은?

세 명.

아마 손을 배꼽까지만 올렸던 사람도 있지요?

와하고 웃음.

볼이 불룩하게 불만 가득한 녀석이, 엄마가 억지로 가라고 한 사람도 손 들어요?

심혈을 들여서 분위기를 달구는데, 찬 서리 같은 눈초리로 쳐다보는 저 싸가지.

쉰 소리 그만하고 수업이나 합시다라고 째리고 있다.

이놈아! 곧 알 일이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축구를 잘하면 뭐 하냐? 사람이 되어야지.

내 말만 잘 들으면 수학을 잘할 수 있게 해 주는데.


학교폭력예방교육시간.

전문가 선생님들이 오셔서 아이들을 동그랗게 둘러앉히고, 게임도 하고, 소개도 하고, 자기 이야기도 하고, 풍선 놀이도 한다.

왁자지껄 건물이 울린다.

그래 우선 관계 맺기가 우선이지.


복도에서 얼쩡거리다 주운 보석

무지개를 보고 싶다면

비를 견뎌야 한다. <돌리 파튼>

하려고 하는 사람은 방법을 찾고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 <옳은 말씀>


들어와 시집을 편다.

어느새 고개가 꾸뻑 떨어진다.

교재로 바꾸고 다시 책에 눈을 박는다.

이번에는 볼펜이 휘청하고 꺾인다.

창문을 넘어온 잠 부르는 햇살

눈은 흐릿흐릿 하품을 부른다.

두어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건강 상태다.

날 풀리면 좀 나아지려나?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몸의 신호

저 꿈틀거리는 벚나무 종아리 같았으면

짠한 부장님 도우려 복도순회를 자청한다.

좁은 복도에 콩나물과 숙주가 섞인 시루처럼 아이들의 머리가 빡빡하다.

소리가 귀를 찢는다.

분주한 발걸음들이 교차한다.

교실에는 서너 명 앉아 공부하고 있다.

아마 교실은 공부하는 곳, 용무가 있으면 복도에서.

타 반 학생은 절대로 들어오지 마시오 했겠지.

점심시간. 운동장 가에서 공놀이하는 놈들.

차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타이름에.

말로는 조심하겠습니다 하면서 갈 생각이 없다.

변상하면 되지요?

딱 고런 눈빛으로.

더 묻지 않았다.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으려면, 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조심해라.

너무 나서다 큰코다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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