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작은 언제나 ‘깜깜한 지도’
게임의 시스템은 냉정하다.
내가 발을 내딛지 않은 구역은 가차 없이 안개로 가려버린다.
인생이라는 게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뿌연 안개가 눈앞에 가득 차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해서 화면을 보니 화면 속 Map 역시 안개로 가려져 있다.
심지어 지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이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나무칼을 손에 꽉 쥐고 한발 조심히 내디뎌보지만 도저히 막막해서 안 되겠다.
나는 ‘지혜의 마법서’를 꺼낸다.
역시 ‘지혜의 마법서’에는 베테랑 플레이어들이
나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앞길의 ‘이정표’를 찾아냈던 방법이 적혀 있었다.
<초보 유저들이 안개가 잔뜩 낀 Map 속에서 ‘이정표’를 찾는 방법>
1. ‘미니 맵’의 작은 점을 따라가기(마일 스톤)
전체 지도는 깜깜해도 오른쪽 하단 미니 맵에는
지금 당장 가야 할 방향이 작은 점(way point)으로 깜박거리곤 한다.
전체 지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니 맵의 작은 점 하나만 보고 걸어야 한다.
그 점을 터치하는 순간, 다음 점이 또 나타난다.
2. ‘빛의 흔적’을 찾기(데이터와 반응)
길이 보이지 않을 땐 먼저 앞서 간 유저들이 남긴 ‘빛나는 발자국’을 찾아야 한다.
3. ‘환경음’과 ‘직감’에 귀 기울이기
시야가 차단된 게임에서는 소리가 이정표가 된다.
폭포 소리가 들리면 물가로 가게 되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면 마을로 따라가게 된다.
‘지혜의 마법서’를 다시 덮고, 나는 눈을 먼저 감는다.
그리고 주변의 소리를 먼저 들어본다.
깜깜한 숲 속이라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조금 더 소리에 집중해 본다. 그러자 갑자기 누군가 ‘여기 좀 봐.’ 하고 속삭이는 것이다.
나는 속삭이는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작은 파란 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바로 알았다.
‘아! 저것이 마일 스톤이구나!’
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에 일단 그 반짝이는 파란 점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그 파란 점 옆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고, 동그란 탁자가 높여 있었다.
탁자 위에는 하얀 수첩과 검정 펜이 높여있었다.
자연스럽게 수첩을 열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였다.
혹시나 싶어서 나는 수첩 위에 손을 얹고 다시 눈을 감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는 수첩에 적었다.
‘도대체 이 수첩은 뭐니?’
그러자 나의 글 밑에 또 다른 답글이 적히는 것이다.
‘수첩에 손을 올리고 난 뒤, 너의 과거를 가만히 생각해 봐.
네가 과거에 했던 일들 중에
누군가의 칭찬을 받았거나 상을 받았던 적이 있니?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을 적어봐.’
나는 바로 수첩에 적어내려 갔다.
『나는 어린 시절 글짓기 상을 여러 번 받았다. 그리고 학창 시절 내가 공책에다가 쓴 소설은 친구들이 돌려 읽는 것을 좋아했고, 인터넷상으로 원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쓴 소설을 메일로 보내주기도 하였다. 또 어린 내가 살고 있던 지역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라는 방송에 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서 나의 편지가 낭독이 되었고, 그것을 본 아버지의 회사 회장님께서 감동을 받으셨다며 나의 한 학기 대학등록금을 지원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의 과거를 써 내려가고 마침표를 찍고 나니, 그 밑에 반짝이는 답글이 적혔다.
‘그럼 그다음 퀘스트는 무엇으로 할까?’
그러자 펜을 잡은 나의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책을 써보고 싶어.’
그러자 이번에는 반짝이는 빨간 글씨가 수첩 위로 떠올랐다.
‘다음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