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말은 바로 생각의 권리를 갖고 있는 존재의 절대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다.
생각의 상자 와 서재
생각은 자유’ 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내게 생기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그 일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철저히 나의 소관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다양한 사탕이나 과자가 든 상자를 내밀면서 ‘하나만 집어라’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우리 모두 있다. 이 떼 무엇을 집게 되는가?
‘가장 맛있어 보이는 것’ 즉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들어있는 생각의 상자가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일례로, 사기를 당해 상당한 손해를 봤다고 하자.
생각의 상자에는 댜양한 내용들이 담긴다
죽고 싶다
그 놈을 죽여버리겠다
나는 바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
부모님 볼 낯이 없다
그때 생각을 다시 했더라면
이백만원이 아닌 백만원만 잃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미숙했다
검토해야 할 사실에 소홀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돈을 다시 찾을 가능성이 없다
이런 여러가지 생각 중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가장 나에게 유리한’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장 향후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을 하나 골라 휴대폰에 유심칩을 꽂듯 내 머리 속에 장착하고 그 생각대로 향후 나의 진행 방향을 계획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버릴생각과 보류해야 할 생각을 각각 다른 상자에 담아 한가지는 쓰레기통에 ,한가지는 <생각의 서재> 에 보관하면 된다.
처한 형편이 나의 힘으로 달라지게 만들 수 없을 때조차 그 상황에 대한 나의 분석과 판단은 전적으로 내게 선택의 권한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주도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쉬지 않고 생각할 수 있는 권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고 하면 한동안은 투자를 위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기존의 시스템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이 있다.
질책을 당하면서 나는 ‘내가 지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한데’ ‘나한테 어떻게 저럴 수 있어?’
하며 분노한다.
그러나 스스로에 질문해야 할 것은
나는 과연 그의 사정에 관심이 있는가? 오늘 그가 어떤 고민을 하고,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하는 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이다. 그러다보면 그의 입장을 헤아리려는 틈이 생기면서 그의 존재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공감 (共感)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교감 (交感) : 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 느낌.
공감이란 감정적인 기분이라고 되어있지만, 그 전에 선행하느 것은 ‘자기도 그렇다’ 는 판단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그 느낌은 ‘같다’는 평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는 주관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란 존재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진정한 공감은 ‘상대방의 존재에 이성적 이해’에서 비롯된다. 순수한 감정 그 자체로서는 저절로 공감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제대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동일시 하려면 반드시 대뇌의 사고 능력을 믿고 격려해 주어야 하고 아딴 싱황과 그에 연루되어 일어나는 감정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성적 판단을 거쳐 비로소 같은 감정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다.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식은 그가 차지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 즉, 누군가가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꺠닫고 그 공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그 절대 공간이 침범되었다고 느낄떄, 또는 그 공간이 실재함을 인정받지 못할 때 존재는 심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것이다.
제대로 된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존재감의 정확한 인식
존재에 대한 존중
이며 , 그 과정의 밑바탕에는 무엇보다도 <확고한 자기주도성을 가진 나의 생각에 의한 존재감>을 확보하는데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