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소르는 낭만에 젖어
룩소르로 오다.
우리 일행은 섬 전체를 숙소로 만든 멋진 리조트에 묵는다. 빡빡한 일정에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부린다.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뛰어가고 어른들은 밀린 빨래를 한다. 빨래를 탈탈 털어 널고 의자에 앉아 차를 한잔 하며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햇살이 축복이다. 나일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랑살랑 빨래를 만지고 있다. 좋아라.
노을 녘에 나일강으로 나가 펠루카를 띄우고 낭만에 젖는 호사가 겹다. 밤에 야외 Bar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하다. 서빙하는 흑인 아저씨가 친절하다. 여기 사람들 인상은 왜 그리 선하게 보일까. 터키에서도 느낀 바지만 이슬람인들의 경건함과 선량함이 마음에 푹 든다. 룩소르의 밤, 하늘도 평화롭다. 여행자의 느긋한 자유, 만끽하다.
왕들의 두려움, 서민들의 인샬라
룩소르는 이집트의 고대도시 테베가 있던 곳, 이집트의 야외박물관이라 할 정도로 유적지가 많다.
햇살이 따사로운데 신전을 보며 돌들과 함께 걷는 기분은 나른하고도 현실감이 없다.
수천 년 전의 그 시대로 돌아가 그 사람들과 그때의 돌들과 대화하는 듯, 시공을 넘나들며 거닐고 있는 듯하다.
< 왕가의 골짜기>
왕가의 골짜기를 간다. 일명 죽음의 골짜기, 파라오들의 공동묘지이다.
피라미드가 아닌 피라미드같이 생긴 거대한 산에 굴을 파 무덤을 만들었는데 60여 개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왕들은 저 넓은 평야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버리고 왜 이 깊은 산속에 자신의 무덤을 팠을까? 답은 극히 단순하다. 도굴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죽은 후에도 몸이 썩지 않아야 영혼이 살아남아 영원한 삶을 산다고 믿었던 그들은 몸을 미라로 만들었다. 도굴이 걱정되어 깊은 산으로 들어와 골짜기 깊숙이 암굴을 파고 자신의 무덤을 파게 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무덤을 판 인부들까지 같이 묻기도 했다고.
람세스 6세의 무덤은 미완성이었다.
재위했을 때부터 자신의 무덤을 만드는 그들의 관습대로 무덤을 만드는 중에 그가 죽었다. 죽은 지 70일 만에 장사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그냥 미완성인 채로 무덤을 덮어야 했던 것. 그렇게 영원히 살기를 욕망했음에도 무덤은 60 여기 거의 다 도굴을 당했다 하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은 꼭 있는 게다.
투트모스 3세, 람세스 3세, 람세스 4세, 6세... 의 무덤들,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돌아보니 무덤들의 차이점이 분별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그 무덤이 그 무덤인 것 같다.
그러다 만난 투탕카멘의 묘!
이 묘는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묘, 즉 발굴된 묘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많은 양의 이집트 유물이 반출되어 있는 상태에서 '도굴'과 '발굴'의 차이가 무엇일까마는, 1920년대에 영국인 카트에 의해 '발굴'되었단다.
18세 어린 나이에 죽어 별 볼 일 없을 것이라 여겨져 도굴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덕에 그의 묘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하니 인간지사 새옹지마?
11kg의 순금으로 만들어진 가면과 110kg의 순금으로 만들어진 관을 포함하여 1700여 점의 보물이 쏟아져 나왔다. 불우하게 죽은 어린 왕에게서 이러할진대 강력한 권한을 가졌던 다른 왕들의 묘는 어떠했겠는가고 현대인들이 혀를 내두른다.
누가 그 많은 무덤들을 도굴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거다.
나는 왠지 이집트인은 아닐 거라고 추측을 한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은 더욱 아니었을 거라고...
여기 와서 듣고 본 서민들의 삶은 '인샬라'의 삶이었다. 가난하더라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만족해하는 인샬라의 삶 말이다.
핫쳅수스 신전으로 가는 길
다음 갈 곳은 죽음의 골짜기 산 너머에 있는 '핫쳅수스 신전'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코스인데 우리는 저 산이 손짓하는 것을 감지한다. 길이 있는 것 같다. 가이드에게 저 산을 넘어갈 수 있냐고, 넘어가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전한다. 길이 있기는 하지만.... 괜찮겠냐고, 이런 손님은 처음이라고, 정 그러시면 조심해서 한번 해보시라고, 그러나 정말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고 다른 일행을 데리고 차를 탄다.
한낮의 이집트의 태양이 쏟아지고 나무 하나 없이 흙과 바위로만 되어있는 저 산을 넘는다는 것이, 그것도 아이들과 함께, 조금 걱정은 된다. 그러나 저 황량한 산은 너무 원초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 위험할 것 같지는 않다. 조심스러운 가이드가 허락한 거라면 갈 만하다는 거다. 게다가 우리 이 모임은 젊은 날 같은 학교에서 만난 명색이 등산모임이다. 이럴 때 본질을 밝히 드러내지 않으면!
햇볕은 매우 따갑고 덥지만 기분은 짱이다. 산 중턱에 이르니 갑자기 머리에 두건을 쓴 건장한 남자가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런저런 조잡한 돌장식의 물건들을 내놓고 뭐라고 열변을 토하는 얼굴 표정을 보니 산도적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이것은 진짜니까 사면 장땡!’이라고 설득하는 장사꾼의 폼이다. 우릴 계속 따라오며 물건을 팔려다 얼떨결에 길 안내도 한다. 기분이 그럴 수 없이 즐겁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골짜기들과 황량한 산들의 풍경은 이곳에만 있을 법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디어 저 아래, 사진에서 본 거대한 핫쳅수스왕비의 신전과 신을 만나러 모여든 사람들이 보인다. 저 아래서 우러러 보는 우리의 모습도 꽤 괜찮을 거다.
나는 평생 볼 돌을 이집트에서 다 본 것 같다. 지금까지 본 돌보다 더 많은 돌을 본 것 같다. 그것도 그냥 돌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유구한 세월의 혼을 간직한 근사한 예술작품을 말이다.
신전에 기대어
카르낙 신전의 기둥들이 몇 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같이 크고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팔을 펼쳐 기댄다. 그 앞에 기대어 사진을 찍으면 우정도 덩달아 두텁고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다. ㅎㅎ
기둥에 새겨진 상형문자들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 예쁘고 정교하고 신기한 암호에 자꾸 사진기를 들이댄다.
오벨리스크!
신전을 지키며 하늘을 향해 양 옆으로 우뚝 서있는 오벨리스크에 넋을 잃다.
어두운 녘에 본 룩소르신전의 오벨리스크는 하나다. 짝꿍 하나는 프랑스의 콩코드 광장에 서 있단다.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정작 이집트에는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오벨리스크뿐 아니라 많은 유적이 외국으로 나가있단다. 빼앗아 갔으니 돌려달라 요청해도 선물로 받았거나 정상적으로 가져간 것이라며 약탈자들은 반환을 거부한다. 약탈해 온 유물을 자기네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하고 싶을까. 선진문명을 자처하는 그들의 '장물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원 주인에게 다 돌려주면 박물관에 무엇이 남을까를 염려하는 걸까. 나라의 힘이 약할 때 자신들의 귀중한 유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일제강점기 때 유출된 보물들이 아직도 일본에 산재하고 있다 하니... 언젠가 콩코드 광장에 있는 짝 잃은 오벨리스크를, 여기 홀로 있던 것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보게 되리라.
이런, 이런, 이런....
오후에 마차를 타고 룩소르 시내를 관광한다.
지금까지 돌과 함께 한 그들의 과거를 봤다면 이제 그들의 현재를 만나는 것이다. 감동은 감동이고, 돌에 질린 것은 애고 어른이고 마찬가지였나 보다. 마차를 타고 시내를 돈다는 말에 다들 신이 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1시간여의 관광길이 몸 둘 바를 모를 난처한 길이 되고 만 것이다.
말을 매단 마차는 좁은 길을 헤집고 다니는데 급기야 시장 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뚫고 질주하는 것이다. 가게 앞까지 물건을 내놓거나 사람도 많고 가뜩이나 번잡한 시장 안의 좁은 길을 어떻게나 그리 잘 빠져나가는지 이건 미안할 새도 없이 사람이 치일까 봐 불안하고 눈치 받을 일에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를 보는 사람들 표정이 험하지가 않은 것이다. 어떤 이는 우호적으로 손을 들어주기까지 한다. 어디서 왔냐고 말을 시키기도 하고 한국인이라 하니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가는 길을 얼른 비키거나 멈추면서도 불쾌해하지 않는다. 불편해하지 않는다. 당신 나라를 찾아준 손님들에 대해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는 아량인가.
그런데 나중에 가이드에게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됐다. 마차에 사람이 치이면 누구 잘못일까? 치인 사람이 잘못이란다. 그래서 마차는 그렇게 거침없이 달리고 사람은 치이면 자기 잘못이니 그렇게 알아서 피하는 것이란다. 이런, 말이 되는 말인가.
이집트의 거리는 질서가 잡히지 하고 지저분한 편이다. 검색이 심하고 군인과 경찰이 아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관광지를 이동하는 버스에는 꼭 총을 든 군인이 탄다. 관광객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함이라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뒷거래가 있는 것 같다. 경험상 가난한 나라의 군인에 대한 편견일까...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은 나라이긴 한데 그럼에도 여기가 먼 이국땅처럼 낯설지 않고 우리 시골에 온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바로 서민들의 인샬라의 삶, 그들의 웃음은 너무나 천진하다. 어느 나라나 그런 것 같다. 서민층의 삶은 대부분 고단하고 애틋하다. 가난한 나라는 더 그렇다.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만큼이나 정신적 자부심을 갖고 살도록 이 나라 정치가 바르게 작동됐음 좋겠다. 정치가 그러라고 있는 것 아닌가?
딸아이의 메모
신전을 돌았다. 우선 세계 최고 규모의 카르나크신전.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도 규모가 작진 않았지만 정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규모였다. 국토가 넓어서 그런 건가 몇만 평, 몇 십만 평 규모라니. 벽화도 잘 남아있고 4대 고대문명의 발상지라 그런지 굉장히 뛰어난 고대기술을 가졌던 것 같다.
마차를 탔다. 아빠랑 엄마 그리고 나 이렇게 탔는데 완전 스릴 넘쳤다. 좁은 시장 골목길로 가는데 사람 하나 박을 것 같았다. 근데 여기선 마차에 사람이 치이면 사람 책임이라고 한다. 보험도 안 된다고 한다. 무섭다. 시장구경이 재밌고 마차도 재밌지만 너무 불안했다. 그래도 분명 귀중한 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