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 사는 아이들
우리 아이들은 피라미드에 걸터앉아 장난을 치고 논다. 교과서에 나오는 피라미드를 직접 본 게 너무 좋고, 생각보다 훨씬 커서 신기하고, 저 커다란 돌덩이들을 어떻게 들어 올려 쌓았을까 생각하니 궁금하단다. 하여 잠시 가이드의 장황한 설명을 듣는 듯하더니 이내 떨어져 나온 돌 위에서 저희들끼리 논다. 뭐가 그리 복잡할 것 있나. 아이들에게 피라미드는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란 돌무덤 놀이터 정도인 것 같다. 맨카우라 왕의 무덤을 들어가는데 입구에서 딸아이가 '쾅' 이마를 부딪친다. 이마가 튀어나올 정도로 아픈 절대 잊지 못할 무덤으로 기억할 게다. 정작 그 큰 무덤 안에는 덩그러니 석관만 놓여있다. 허, 허무한 지로고... 영원과 영혼의 의미를 부여하며 만든 선인들이나, 수많은 의미를 찾아내려는 어른들의 상상만이 복잡할 뿐이다.
1980년대를 살았던 우리
“~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사막엘 가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그래 그렇게 낙타를 타자~”
난 종로 뒷골목에 있던 ‘목로주점’이라는 학사주점에서 친구들과 이 멋들어진 노래를 불렀었다. 해외여행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사막이 어디에 있는지, 낙타를 탄다는 게 현실에서 가능하기는 한 건지, 우리에게 그런 낭만이 실현될 날이 오기는 오는 건지 모른 채 잔을 부딪치며 노래를 불렀다.
술 권하는 암울한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면서 그런 현실감 없는 낭만적인 노래를 부르며 분노와 감상을 섞었던 것 같다. 제발 내 앞가림만 해도 되는 젊음을 누려봤으면, 왜 우리는 20대의 새파란 나이에 이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짊어져야 하는 건지, 아니 시대의 무게가 버거워 회피하는 나약함을 자책하며 괴로워했던 것 같다. 정작 쥐뿔도 없이 술타령만 하면서 있지도 않은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떠나자거나, 사막에 가서 있는지도 모를 낙타를 타자고 고래고래... 환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환상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옆에서 낙타를 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몇 년 모은 적금을 타서 동시대를 살았던 친구들과 함께.
낙타를 탈 때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커다란 낙타는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가 사람이 타면 무릎을 편다. ‘어부바’ 하며 늙으신 할머니가 손자를 엎고 일어날 때 ‘에구구’ 하며 일어서는 것 같다. 낙타가 드디어 끙 일어나는데 우리는 앞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얼마나 높던지 우리가 허공 위로 쑤욱 올라가는 거다. 딸아이랑 동시에 “엄마야!” 서로의 엄마를 찾는다.
약 40분 정도 피라미드 주변을 돈다. 뭐 노래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았으나 7080 세대들의 얼굴은 만감이 교차하는데 꽃치장을 한 낙타는 피라미드처럼 표정이 없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