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집트, 영혼이 영원하고픈 나라

by 순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게 아냐


훅, 이것은 사막의 향기?

방문한 나라의 첫인상은 공항에서 시작된다. 그리스를 출발하여 새벽에 도착한 이집트의 카이로 공항, ‘훅’하는 덥고 매캐한 공기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유럽을 떠나 새로운 대륙, 사막이 있는 아프리카의 한 도시에 왔다는 사실에 우리는 상기되어 있을 것이다. 유럽과는 또 다른,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나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뜨게 한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로 가는 길.

버스에서 보는 풍경은 뿌옇고 탁하다.

창밖으로 맨발에다 낡은 옷차림새의 사람들이 과일을 가득 실은 노새와 함께 터벅거리고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거리는 정돈되지 않았으며 노새들과 사람들이 섞여 어디론가 오가는데 뭔가 느릿느릿하다. 도시의 아침이 분주하거나 썩 활기차 보이지 않는데 서울의 정신없이 복잡한 거리를 기준으로 생각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인지 모르겠다.


띄엄띄엄 아랍어로 된 간판들을 보면서 작은 아이가 뭐라고 쓰여있냐고 묻는다. 시방 내게 묻는 말? 얘네 글씨는 글자와 글자의 경계선이 없어 보인다. 도저히 흉내 내 쓸 수 없는 글씨라고 생각을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문자를 쉽게 사용하고 있을까? 혹 남들도 우리 한글을 보며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꼬부랑글씨라며 신기해할까? 하는데, 갑자기 저 앞에 피라미드가 쑤욱 나타나는 거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중요한 장면들이 있다. 무지 유명한 장소, 무지 유명한 유물, 무지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 곳...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다. 아이들과 같이 어디를 갈 때,

“ 얘들아, 얘들아, 이것 봐! 저것 봐! 아름답지! 근사하지! ”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게, 더 느끼게 하려고 외치는 엄마들의 외침이다.

나 역시 부산 떤다. 얘들아, 저것 봐. 와~ 피라미드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이 장면은 이집트 여행의 주요 장면이어야 한다.

피라미드 앞에서 생각한 피라미드 사회


기자의 피라미드 셋.

쿠푸왕, 카프레왕, 멘카우라왕의 것으로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의 무덤이다. 생각보다 훨씬 큰 무덤 셋이 딱 펼쳐져 있는데 꿈결 같다. 사진으로 볼 때는 흙으로 만든 산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보니 거대한 암석과 같이 단단한 건축물이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들은 재위할 때부터 죽은 후에 묻힐 자기 무덤을 지었다. 어떤 왕은 무덤이 완성되기 전에 죽기도 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닌 셈이다.


죽은 후에도 신과 같이 영원히 살고자 했던 그들의 끝없는 욕망은 이렇게 후손에게 거대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왕권의 세력과 무덤의 크기는 비례했다고 한다. BC 2500년경 지어진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안내하는 수치를 보면,


돌 한 개 : 평균 2.5톤 (50톤이나 되는 돌들도 있으며, 50톤이면 50,000Kg 아냐? )

들어간 돌 : 총 230만 개

돌들의 총 무게 : 5,900만 톤

높이: 147미터

한 변 길이: 230미터(총 네 면)

동원 인원 및 완성 시간 : 돌 캐고 자르고 옮기는데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10년,

쌓고 완성하는데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 피라미드 1기 완성 기간 : 30년,

이집트에서 건축된 피라미드 수 : 80기...


워낙 숫자에 둔한 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피라미드에 놀라움을 표하며 밝혀지지 않은 여러 비밀들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다. 세기의 불가사의한 이 건축물은 돌 하나를 캐고 다듬는 것부터 140m의 높이까지 쌓아 올리는 데 나무와 돌을 재료로 하며,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사람 손에 의해 만들었단다. 그것도 빈틈없이 완벽하게. 어떻게 가능하지?


큰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큰 건축물들이 많다. 처음엔 ‘와우! 대단한데!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감탄이 절로 난다. 그런데 ‘이것을 쌓아 올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마음이 생긴다. 일단 그 크기가 상식을 초월하여 너무 거대하니까. 오늘날처럼 크레인이나 첨단 기계도 없었을 텐데 얼마나 힘을 들여 지었을까.


대피라미드의 주인인 쿠푸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몹시 가혹한 정치를 한 왕이었다고 한다. 이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 당시 노예나 포로는 강제 노역을 했을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일반 백성들이 임금을 받고 동원됐을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임금은 제대로 지불되었을까? 노임을 받지 못한 백성들이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훗날 도굴에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대 공사는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백성들의 피땀 어린 노역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역사의 아이러니


이 철권통치의 주인공은 4천 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 그들의 후손에게 그 노임을 지불하고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집트의 고대문명을 보러 몰려오는 것이다. 여기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은 이집트의 재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쿠푸왕은 선견지명이 있는 왕이었으며, 그때 고생한 민초들의 후손은 이제야 보상을 받는 것일까?


문득 아까 창밖으로 보았던 거리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수천 년 전 조상들의 은덕을 누리는 자긍심에 빛나는 부요한 모습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의 유적지에는 어린아이들이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로 1달러를 외치며 기념품과 엽서들을 팔고 있다. 국가적인 부가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지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쿠푸왕의 선견지명은 일부 계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강과 같이 카이로는 나일강을 끼고 있다. 강 주변은 최고급 호텔 등 높은 빌딩들로 잘 정비되어 있다. 얼핏 보면 아주 발달한 도시 같은데 사실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란다. 놀라운 것은 이 나라는 일부러 중산층을 만들지 않는 정책을 쓴다는 것!

빈민층은 기본 생존만 유지되면 뭐든지 인샬라(신의 뜻대로)이며, 석유자원이나 막대한 관광수입은 소수 권력층이나 부유층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중산층이라는 완충 장치가 두텁게 분포되어 있고 사회 계층의 이동이 자유롭다면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살 것이며 사회는 안정되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렵다면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사회는 갈수록 양극화가 되어 경제 사회 정치 전반이 매우 불안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도적으로 중산층을 키우지 않는 이집트 지배층들의 행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수천 년 전이나 현재나 그 땅의 백성들의 삶의 궤적이 향상되지 않고 답습되는 것이 안쓰럽다.


여행했던 나라가 TV에만 나와도 귀가 쫑긋해지고 친근해지는 것은 물론 특별한 애정까지 생기게 된다. 오지랖도 넓어진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찬란한 문화유산만큼 현재의 삶의 모습도 그에 걸맞았음 좋겠다. 사실 빈부격차는 이 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격차, IMF 이후 몰락해 가는 중산층, 부의 쏠림 현상. 남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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