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는 글'은 제 브런치 글 중 "방학이닷!"의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방학과 성적표는 패키지
기말고사를 마치고 방학을 앞둔 학교는 방학식날 성적표를 배부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인다. 야영 계획도 세우고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상담도 해야 하고 아이들과 한 학기를 정리하는 시간도 가져야 하는데, ‘방학은 성적표와 함께!’를 위해 성적처리를 하느라 선생님들은 분주하다.
성적표를 방학이 끝난 후, 개학 이후에 배부하면 안 될까. 제발 방학 동안이라도 고단한 몸 좀 쉬고, 부담 없이 즐겁게 뛰놀 수 있도록 말이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날 것 같다. 그 긴 방학 빈둥대는 아이를 어찌 보라고, 모자란 과목 보충하고 잘하는 과목 더 채워야 하는데 무슨 기준을 갖고 어떻게 관리하라고 성적표 없는 방학을 맞는단 말인가.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그랬나? 언제부터 방학이 성적표와 함께 시작됐을까? 학생들은 아직 미완의 인간이며 언젠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공부만이 최대 목표가 되어버린 어느 시점부터, 학원이 급성장하게 된 어느 시점부터 그리 되었을 것이다. 방학을 더 끔찍해하는 녀석이 생긴 것도 그 즈음부터일 것이며....
어떻게 하면 떠날까
“선생님 자녀분은 말 잘 들어요?”
비슷한 또래의 어머니들이 상담 끝에 묻는 말이다. 당신 뱃속에서 나온 아이인데 이 아이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되고, 때로 이 아이가 무섭기까지 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자신도 없고 막막하다는 부모님이 적지 않다.
“너는 좋겠다.”
주말이나 방학은 물론, 내 쉬는 날 아이 체험학습 내고 놀러 갈 생각만 하는 나를 친구는 용기 있다고 한다. 부럽다고 하며.
잘 노는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미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것, 교사가 행복해야 제자가 행복하다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떠난다. 아이들과 또는 남편과 또는 친구들과... 그리고 혼자서도.
쉬라고 있는 방학, 혼자 공부해 보라고 있는 방학이다. 학교를 벗어나 타인과 만나고, 사회와 만나고, 자연과 만나고, 더 큰 세계와 그리고 자신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공부인지 어른들은 다 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걸리는 게 많다. 돈과 시간 정성... 그리고 학원.
여행은 직접 체험, 책은 간접 체험이라 배운다. 가능하면?
여행 중에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이 보게 하고 더 집어넣으려 하는 조바심을 내기도 한다. 투자비용이 생각날 때가 없지 않다. 녀석들이 보는 것에 시큰둥하거나, 힘들다고 짜증을 낼 때, 본 것에 대한 기억도 의미도 희미할 때, ‘ 어휴, 들인 돈이 얼만데...’. 아깝다. 그러나 욕심을 경계한다. 효용가치를 살피고 손익계산서를 따지는 자본의 습성을 내려놓는다.
반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소풍을 가거나 놀러가곤 한다. 대부분의 아이가 산엘 처음 간다. 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의 체력은 초입부터 힘겨워한다. 뭐 하러 도로 내려올 정상엘 애써 오른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그만 멈추고 중간에서 대충 놀아볼까 선생님 눈치를 보는데 모른 척 뒤에서 몰고 간다. 헉헉 대며 산에 오르는데 정상을 저기 앞두고 그들끼리 하는 얘기가 띄엄띄엄 들려온다.
“아으, 힘들어. 야,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고지가 바로 저기야.... 가자.... 우리 인생도 이럴 것 같지 않니. 힘들겠지. 그런데 힘들어도 오르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거... ” 아이구 기특한 것들. 이런 살아있는 인생 체험을 어떻게 교실에서 가르치랴.
집에 있는 우리 아이들과 여행할 때는 많이 걷는다. 짐을 끌고 메고 약도를 보며 목적지를 찾아간다. 숙소를 찾기 위해 몇 시간을 헤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그 도시가 어떤 모양인지 그려진다. 곧 지도만 보고 우리나라 길처럼 익숙하게 돌아다니게 된다. 거미줄보다 더 얽힌 복잡한 일본의 전철도 더 이상 어렵지 않다.
빈곤한 나라에 사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의 실제 삶을 보며 아이는 충격을 먹는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늘 부족하다고 구시렁대는 불만이 얼마나 죄송한 것인지, 효자가 되고 애국자가 되기도 한다. 마음이 한 뼘 자란 것이다.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 기행은 무척 설렌다. 하루에 다 볼 수 없는 넓은 공간에 전시된 방대한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보려면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꼭 보고 싶었던 유물이나 그림을 찾으러 각자 자유롭게 다니기로 한다. 감동이 오는 그림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바라볼 때의 그 행복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아이는 나중에 대학생이 되면 혼자 꼭 다시 오겠다고 한다. 그러렴.
꿈을 꾸는 아이를 위하여
여행은 잘 노는 것을 배운다.
자연이 주는 평화와 깊이를 만끽할 수 있게 한다. 학원은 물론 교실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의미심장한 앎을 얻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다름을 체험한다. 더 넓은 사회를 배우고, 우리를 둘러싼 낯선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한다.
돌아와 식탁에서 시큰한 김치에 얼큰한 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먹는데 떠나온 곳의 풍경과 이야깃거리가 재잘재잘 풀어져 나온다. 거덜 난 살림에 잠시 긴축을 하며 손가락 빨아야겠지만 이미 마음은 풍요롭다. 일상에서의 일탈을 누리고 돌아와 일상을 더 사랑하며 열심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렘이 인다고 했다. 우리 아이는 헤매던 거리가 그리움으로 떠오르며 언젠가 다시 찾을 꿈을 꾼다 했다.
지중해 여행 (2006. 1.6 -1.25)
사랑하는 사람들과 떠나는 특별히 행복한 여행이다. 우리 가족 넷과 오랜 친구들과 그 아이들 17명이 함께 20일간 떠난다. 우리 아이들은 그리스에 많은 기대를 건다. 한창 잘 나가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의 영향일 게다. 이미 만화책은 너덜너덜할 정도이다. 내친김에 아이들에게 그리스에 대한 자료 조사를 맡겼다. 인물도 줄줄이 꿰고 이야기도 통달한지라 실제로 그곳에 간다는 것에 무척 들떠있다. 나는 어느 하나 딱 꼬집을 수 없이 모두 기대되고 설레는 곳이다.
3년 전 계획하고 준비한 지중해, 친구들과 돈을 꼬박꼬박 모으면서 지중해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이미 짙푸른 바다와 신들의 이야기와 역사들이 내 시간들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그리스 터키 이집트, 이 얼마나 황홀한 이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