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피난 교회에서 생각하기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로 올라온다. 이집트의 마지막 여정인 사막으로 가기 전, 오늘 하루 가족끼리 자유일정을 갖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올드카이로로 오다. 50파운드 부르는 걸 40파운드에 간신히 깎아 왔는데 알고 보니 남들은 20파운드로 왔다네... 흠... 잘했어....
먼저 가고 싶었던 곳, 예수피난교회 (성 세르지우스 교회)다.
예수 탄생 후 동방박사가 왕이 났음을 알리고 떠나자 당시 이스라엘 왕인 헤롯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3살 이전의 남자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한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애굽(이집트)으로 피난을 와서 머물게 되는데, 그곳에 세운 교회이다. 이슬람국가에서 교회를 보는 것이 새롭다. 그것도 예수피난교회라니...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유적일 터.
여행을 떠나오기 전 많은 책을 읽고 미리 감을 잡고 오지만, 실제 그 유적지나 유물을 만나면 마음이 벌렁인다. 여러 성화가 있고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아담하고 소박한 예배당이다. 유서 깊은 곳이라고 화려하게 복원하지 않아 좋다. 기도를 올리다. 감개가 무량하단 말은 이때 쓰는 말일 게다. 평화롭다는 마음도 이런 때 드는 마음일 게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런 감개무량과 감사의 시간이 많다. 몸은 고단하지만 이렇게 건강하게 여행을 다니며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럴 때 마음 한쪽에 ‘우리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한다. ‘여행을 위해 우리가 쓰는 돈으로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지 않나’ 불편한 맘도 있다. 어떻게 산뜻하게 해결이 안 되는 마음이다. ‘죄송해요. 아껴 쓸게요. 지혜를 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불편함을 정리하곤 한다.
우리는 어떤 색깔의 삶을 원하는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사는가.
우리 집의 소비 행태는 좀 다르다. 남들이 많이 쓰는 곳에는 (예를 들면 학원비, 몸치장비, 집에 놓는 물건...)
가능한 아끼기로 한다. 대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 이런 여행에는 몰빵을 하게 된다. 물론 둘의 월급을 모아모아, 깨거나 미리 땡겨쓰거나...
여행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있다고 다 여행을 다니는 것 같지는 않다. 학기 중에는 물론이고 방학 때 더 바쁘게 학원으로 보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 보자고 생각을 모은다. 조금의 용기도 필요하다.
삶의 방식이 다 다를 게다. 평안하게 앉아 묵상한다. 아이들은 촛불을 켜고 또 켜고... 뭘 생각하고 있을까. 생각 반, 재미 반?
동갑이네요
교회에서 나와 이집트의 시내 타흐릴 광장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 Mar Girgis역으로 간다.
플랫폼 저쪽 건너편에 꼬마 녀석들 몇이 있었는데 우리를 보더니 왁자하게 이쪽으로 건너온다. 외국 어린이가 반가운 모양, 아들을 신기해하며 둘러싼다. 몇 살이냐고 묻는 것 같다. 13살이라 하고 너희는 몇 살이냐 물으니까 못 알아듣는다. 손가락으로 표시해 주니 놀라며 자기는 12살이라고. 자기보다 어린 꼬맹이로 알았는데 형이라니... 이런 눈빛이었다. 생각해 보니 만 나이로는 동갑들이겠다. 기분 좋게 사진도 한 컷 찍는다. 한 녀석은 전철 안까지 따라와서는 막 아는 체를 하고 좋아라 하더니 내릴 때는 자기 이제 내린다고 손짓발짓하고.....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전철 안의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본다.
터키의 한 소도시에서도 우린 진짜 인기 많았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동양인을 처음 본다는 듯이 점원도 경찰도 지나가는 택시 기사도 멈춰서 우릴 바라보았다. 그날 그들은 집에 가서, “ 와, 오늘 나 외국 사람 봤어!” 할 표정들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마치 연예인이 된 듯한 표정이었고...
카이로에서 살아남기
타흐릴 광장에서 ‘이집트에서 살아남기’를 하다.
저쪽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도무지 건너갈 수가 없다. 차도에는 차와 사람이 같이 다닌다. 길을 건너는 것이 모두 무단횡단이다. 차의 흐름을 따라 건너야 한다고 들은 거 같다. 신호등도 없고 있어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횡단보도도 없고 있어도 무시, 차는 사람을 보고 절대 멈추지 않으며 차가 온다고 사람이 그냥 서있거나 기다리지 않는다.
언제까지 막막해하고만 있을 수 없어 우리도 시도하기로 한다. 사람들 무리에 끼어 아빠와 아들, 나와 딸 이렇게 둘씩 짝을 지어 건너기로 한다. 사람들 흐름에 끼었다 싶었다. 그러나 인도에 남아 있는 건 우리뿐이었고 어느새 그들은 다들 건너가 버렸다. 결국은 우리도 해냈다. 막 뛰는 거다. 차의 흐름을 따라서, 너무 빨리도 말고 너무 느리게도 말고.
정말 정신 빼는 나라다. 매연에 소음에 경적에. 그러나 정신 사나워하는 건 우리들뿐이고, 그들은 여유만만, 불만에 찬 표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샬라.
그때 떠오른 기억 룩소르! 마차나 차에 사람이 치이면 누구 잘못? 사람 잘못!
이집트의 차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횡단보도 앞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차에 책임이 있으며, 무단 횡단을 했더라도 사람이 치이면 일단 조심하지 않은 차에도 과실을 묻는 게 맞지 않나?
그러나 여기, 사람이 덜 중요한 이런 문화들이 사람을 얼마나 왜소화하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시장거리를 구경하다 공기가 심상치 않아 포기한다. 마스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게 매연이 심하다. 그러나 마스크를 한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조금 남았다. 한글로 ‘인터넷’이라 쓰인 곳으로 들어가다. 꽤 큰 인터넷카페이다. 30분간 익숙한 세상과의 소통. 한꺼번에 좌악 삭제해도 되는 광고성 메일만 70여 통. 그리고 포탈 뉴스로 그리운 국내정세도 본다. 별일은 없는 듯. 웬일? 별 일이 없는 사회가 다행이다.
카페에 ‘이집트의 카이로’를 알리는 글 하나 올리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