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여행 정리
트로이 유적지
비가 흩뿌리고 바람이 차다. 7시, 아직 날은 새지 않고 휴일이라 사람도 드물다. 45인승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갈리폴리 전쟁유적지가 있는 해협에서 터키식 점심을 먹다. 멀을 만. 약 30분간 배를 타고 차나칼레란 항구에서 내리다.
트로이 유적지로 가다. 유적 I에서 IV까지. 슐레만이 파헤쳐놓은 공적과 약탈과 훼손 등, 트로이 도시에 3만이 살았다는데 도시 형태는 매우 작아 보여 상상이 잘 안 된다. 날은 몹시 춥더라. 바람이 칼 같다. 터키의 겨울을 우습게 본 모양이다.
그 유명한 트로이목마. 아이들은 마치 커다란 장난감 말을 타는 듯이 떠들썩하다.
이 목마에 몇 명이 들어갔다고? 여인 한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전쟁이야기, 이 트로이목마로 인해 전쟁을 끝냈다는데, 이 신화는 가끔 헷갈린다. 실화인가? 이렇게. 어쨌든 하 유명한 목마이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오르락내리락, 들락날락 신기해한다.
몇천 년에 걸쳐 도시 몇 개가 세워졌다 사라졌다 하였다는데, 슐레만 역시 어렸을 때 읽은 신화를 사실로 믿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파헤치고 복구하였단다. 아무것도 없는 폐허에서 찾아낸 그의 열정과 상상력이 대단한데, 한편으로 내 맘에 드는 찜찜함은 뭔지 모르겠다.
에페소 유적지
오늘은 에페소 유적지를 간다. 성경 에베소서의 배경이 되는 도시라 일찌감치 기대를 했던 곳이다. 셀주크로 계속 남하하여 그 바로 밑에 있다. 3시간 30분쯤 달려왔나. 11시 반부터 에페소 유적지를 둘러본다. 입구에서부터 시청길, 하드리안 신전과 기독교인을 가둔 감옥, 마을과 셀수스 도서관, 아고라, 원형극장 둘.
에페소는 예전에 흥청거리던 아주 큰 도시였다 한다. 천오백 명 수용의 귀족극장과 3만 오천 명 수용의 대형 극장. 마이크 시설도 없이 바다를 앞 배경으로 하여 그 파도의 울림에 따라 관객들에게 소리가 바로 전달되게 만들었단다. 실제로 무대에서 내는 작은 소리도 무대 위 맨 끝에까지 울리더라.
온전히 돌로만 만들어진 원형극장이 참으로 아름답고 멋지다. 어찌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었을까.
무대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데 지금 마치 그리스 비극이 공연되고 있고, 수많은 관객들이 몰입하여 감상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가슴이 벅차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객석까지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오랜만에 햇살이 퍼지는 하늘 아래 한참을 넋 놓고 앉아있다. 다들 그때의 장면을 상상하고 있지 않을까...
햇살은 참 신기하다. 낯선 곳에서의 햇살은 나른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드디어 여행을 왔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 여행객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우리나라 젊은 배낭족들도 있다. 그들은 차를 타고 함께 다니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있던데 글쎄 그 시절 배낭 메고 그렇게 돌아다니는 때가 훨 좋다는 걸 미리 알면 더 뿌듯한 기분일걸?
바울이 개인적으로 몰래 전도하러 다녔다던 셀수스도서관(두란노서원)을 눈앞에 대하니 먼 옛날 얘기가 삐져나오는 듯하다. 시민과 철학자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토론과 연설을 했을까. 앞으로 에배소서를 읽으면 여기가 선하게 떠오르며 느낌이 새롭지 않겠나 싶다.
카파도키아의 장관들
젤베야외박물관.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들, 감탄 터져 나온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입이 벌어지는 것일까. 온전히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 마치 인공적인 무엇을 닮은 거 같아 놀라운 것일까.
석회암이 균열되어 생긴 큰 돌들이라 하는데,
그러나 그런 지리학적 설명 말고, 일단 보면 "우째 이런 일이! " 경탄하리라는 것!
가이드는 여기 달려오면서 버스 안에서 말했다. 오늘 점심은 버섯전골을 준비해 놨다고. 우리는 뭣도 모르고 와우! 하면서 정말 뜨끈한 것을 기대했는데,
이런 수많은 버섯이었다는 것!
데린구유 지하도시. 이 지하에서 인구 만 오천이 살았다 한다. 기독교인이 박해를 피하여 내려간 곳, 지하 8층 9층까지 파내려 간 비밀 도시이다. 내려가는 길이 미로 같고, 내려가면서 아 정말 기가 막히고 착잡했다. 학교 교회 등 없는 거 없고 있을 거 다 있는 엄청난 동굴이다.
신앙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그렇게 순교자적인 삶을 살았다. 그 컴컴한 동굴에서 그들은 어떤 희망을 안고 살았을까.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 것은 매우 극적인 일이었을 게다. 그때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상상한다. 일제에서 해방된 날 느꼈을 독립투사들의 맘이 그랬을까. 절망에서 구원되는 기적의 날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지상을 향해 조그만 구멍 하나를 뚫어놨다. 그곳으로 한 조각 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것을 보며 지상으로 나갈 그날이 올 것을 믿었던 것일까. 마음이 처연해진다. 신앙이 뭔가...
이곳에 오기 전 낙타를 몰고 다니던 대상들의 숙소였다는 '카라반샤라이'에서 이슬람인의 수피댄스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수피댄스는 예배의식의 하나로 춤을 추며 알라와 만나는 의식이란다. 연주자들 4명이 하나씩 나와 인사하고 이어 춤추는 사람 다섯이 나와 하나씩 인사하고 좌정. 그리고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한다. 그다음 연주 그리고 빙글빙글 도는 춤, 그리고 마무리 기도. 이렇게 진행되는데 노래도 그렇고 음악고 그렇고 연주도 춤도 모두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빙글빙글 끝없이 도는 춤을 볼 때는 놀라웠다. 우리나라 무당이 작두 위에서 펄펄 뛰며 신과의 만남을 이루는 의식과 같은 것일까. 무아의 경지를 만들어내는 듯하다. 이슬람의 경건함과 신에 대한 그들의 완전한 믿음을 보는 듯하다. 한 젊은이의 춤은 유난히 애처롭고도 황홀하기까지 하다. 몰아지경. 보는 내가 접신할 지경.... 또다시 신앙이 무엇인가....
<벽에 걸린 수피댄스 그림>
을라라 계곡. 데린구유에서 지하 동굴의 삶을 살았던 이들이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오히려 신앙심이 엷어지는 것을 경계하여 계곡 밑으로 내려가 동굴을 파서 기도생활을 한다.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게 계곡 밑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 계곡을 위에서 봤을 때는 깜깜절벽이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가 내게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종교가 뭔가, 신앙이 뭐길래 인간이 그렇게 절박하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나의 신앙생활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 나이브한...
우치하르. 이것도 지형으로 인해 생긴 암석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커다란 암석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 아파트같이 생긴 벌집들. 벌집같이 생긴 집들. 주변에 그런 암석이 많다. 카페도 있다. 암석과 암석이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어느 집에 들어가 미로같이 생긴 길들을 신기해하며 건너다니다 주인을 만나다. 기념품 가게 겸 차를 파는 곳이다. 맘씨 좋게 생긴 주인아저씨와 사진 한 컷. 그가 구경시켜 준 잠자리도 근사하다. 성수기 때는 좋은 카페가 될 것이다. 이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풍경이다.
이스탄불 자유일정 1
비가 보슬거리는 거리는 한적하고 오슬거리는 중에 드디어 우리 식구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예전 모르는 도시를 헤매고 찾을 때처럼 지도 가지고 이 도시를 접수하는 거다.
먼저 카리예박물관. 모자이크 성화로 유명한 교회, 11세기에 세워졌단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굳이겠지만 기독교인이라면 꼭 가볼 만한 곳이라고 여행 책자에 소개되어 있다.
안에 있는 성화들을 보다.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그림들이 천정에 붙어있어 목이 빠지게 쳐다보다. 성경 속에 있는 내용이라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다. 히브리나 헬라 글씨일 듯한데, 읽지 못하니 인물이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 눈엔 그게 그거다. 어쨌든 지금은 벗겨진 것이 많지만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매우 아름다운 교회였을 것이란 느낌만.
다음 계획은 트램을 타고 술탄마흐멧으로 갈 예정. 이스탄불을 자랑스럽게 이름 날리게 하는 온갖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비는 계속 오고 아무리 묻고 찾아도 20분 걸으면 있다던 울루바르트 트램역은 찾을 수 없다. 지치도록 걷는다. 드디어 모르는 도시를 헤매는 역사가 또 시작되다. 결국 트램역은 찾지도 못하고 한 메트로역(엠리예트역)을 찾다. 다음 정거장인 악사레이역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고 술탄마흐멧으로 오다.
먼저 고고학 박물관. 거기도 잠시 헤매다. 박물관 트램역에서 내리면 바로 있던데 톱카프궁전으로 들어가 다시 기어 내려와 찾다. 표를 끊고 열심히 구경하는데 좀 작은가 싶더니 그 건물은 별관, 저쪽에 커다란 본관이 기다리고 있다. 어쩐지... 대리석 조각이 엄청 많다. 이 나라는 가장 흔한 게 대리석이라 하더니 정말 식당 바닥이고 뭐고 보이는 게 다 대리석이다.
아이들은 책에서 소개한 작품들을 찾아다닌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인물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나는 여류시인 사포 앞에서 한 컷.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라 불리는 그 웅장하고 훌륭한 조각 앞에서도 한 컷. 3층까지 전시된 모든 것이 우리나라로 치면 국보급이 아닐는지. 많기도 하여라. 거하기도 하여라. 부러워라.
한국식당을 찾다. 역시 한참을 헤맨 끝에. 한국관. 정말 기가 막힌 맛이다. 김치찌개, 짬뽕, 라면. 아 이 김치맛 이라니... 하며 엄청 맛있게 먹다. 힘든 우리 아이들 우리 모두 대만족. 배가 어찌나 든든한지.
바이람기간이라 그랜드바자르는 문을 닫다.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할 수 없다. 다시 트램을 타고 에미뇨뉴역에서 내려 갈라타교로 오다. 카페가 줄지어 있다. 차를 마시고 아픈 다리를 풀 겸 조용한 카페에 들어오다.
커피를 마시며 보스프러스 해협을 보고 있다. 비가 오다 말다, 바람이 불다 말다. 여름에 이 해협은 참 아름다울 거다. 이희수 씨가 입에 침이 마르게 찬양한 곳, 그 보스프러스 해협에 앉아있다. 곳곳에 모스크와 탑과 궁전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여유작작 노니다가 나오다.
갈라타교를 걸어서 건너기로 한다. 고등어케밥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한다. 아무리 배불러도 유명한 고등어케밥을 건너뛸 수는 없지. 구운 고등어에다 토마토 양파 등의 야채를 넣어주고 그냥 먹는 거다. 흠, 맛은 토마토양파고등어 맛....
온몸이 쑤시고 삭신이 노곤거린다. 쉼이 필요하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와서 2시간 단잠을 자다. 한결 가뿐해진다. 8시 30분 벨리댄스를 보기로 되어있다. 탁심 광장으로 가서 온 식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이스탄불의 거리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바람도 흐르고 있다. 우리 명동과 같다. 사람들이 많다. 구경 좀 하고. 핀도 하나 사고.
벨리댄스를 보다. 쇼를 하는 커다란 식당인데 한국인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가, 먼저 한국여인이 나와서 춤을 춘다. 그리고 계속 같은 종류의 쇼가 진행된다. 지루해진다. 몸이 연체동물보다 미세하게 막 움직이는 게 예술이었을 법 한데, 어째 성적인 춤으로 상품화가 된 것 같아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아이들이 졸다 자다 한다. 엄청 피곤할 텐데 짜증도 없이 잘 견디고 있다.
이스탄불 2
오늘 보는 것은 인간이 만든 거대한 유물들이다. 하루 안에 다 보고 떠나야 한다.
블루모스크, 그 엄청난 사원, 타일로 꾸민 것이 참 아름답다.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싶은데 이방인(이교도)은 볼 수 없단다. 아야소피아 성당이 얼마나 아름답길래 그것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 욕심을 냈던 것일까.
아야소피아 성당으로 가자. 비잔틴 시대의 성당이었던 것이 오스만튀르크족의 점령으로 이슬람사원 모스크로 바뀐 건물이다. 점령자들은 성당 내에 특별히 종교적인 색채를 띄지 않은 그림은 그대로 두고 기독교적인 성화는 회칠을 하여 그 위에다 그림을 다시 그렸는데 현재는 다시 복원된 그림을 볼 수 있다. 지진이 많은 지역이라 세계 유네스코에서 이 성당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데, 성당 중앙에 거대한 철제 버팀목을 세워 지탱해 놓은 것이 보기에도 심란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배를 타고 보스프러스 해협 크루즈를 한다. 약 2시간 흘러 내려갔나 보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올라오다.
돌마바흐체 궁전. 그 화려함을 어찌 표현하리오. 보석들과 찬란한 장식품과 샹들리제들.. 사치와 탐욕으로 백성을 힘겹게 했던 것들이 오늘날 후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여행 중에 이런 아이러니들을 여러 곳에서 본다. 딸아이는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궁전에서 큰 감명을 받았단다.
기차를 탄다.
8시에 출발하는 그리스 데살로니카 행 밤기차다. 침대 기차. 기다린 일정이다. 오랜만에 그와 오붓이 한잔 한다. 기분이 짱이다. 애들은 애들끼리 신나고 어른은 어른끼리 신난다. 이번 여행은 우리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느라 가족여행 느낌이 덜 든다. 편하긴 하다만 좀 아쉽기도. 내일 아침 8시쯤이면 그리스에 도착한다. 아이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다.
7일간의 터어키. 수많은 유적을 간직한 나라, 돌들의 나라, 소박하고 친절했던 이슬람인들의 나라, 그들의 신심과 초기 기독교의 유적이 공존한 나라를 떠난다. 아이는 뭐라고 일기를 쓰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