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캠퍼밴과의 여행
프롤로그 : 뉴질랜드 예찬
1. 여행에 대한 작은 물음 - 자유
나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낯선 곳이란 것이 왜 의미가 있을까.
보여주는 삶과 내 삶이 어떤 간극을 가지고 대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느끼는 자유로움은 어떤 것일까.
예를 들어
속옷이 비어져 나와도
아니 속옷을 입지 않아도 좋은,
누구도 나에게 관심 두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대체 얼마큼 중요한 자유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것을 위하여, 물론 그것 정도겠냐만,
그 많은 비용과 시간과 고생할 각오와 용기까지 챙겨 가지고 나오는 것일까?
2. 뉴질랜드의 자연과 인간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달린다. 바다와 같은 호수 주변으로 길이 나 있다. 걸어도 좋을 길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자전거로 몇 시간을 트레킹 하는 동안 모든 곳에서 쉬고 싶었다. 모든 곳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달리는 동안 가게도 장사꾼도 없다.
숲으로 우거진 길은 모두 흙길이다. 나무 등걸이나 벤치에 앉아 배낭에 싸 온 사과와 커피와 물을 마시며 하염없이 호수와 나무를 바라본다.
이들의 여유와 이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뉴질랜드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거스르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사람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자연은 인간을 배반하지 않고 평화와 쉼을 준다.
3. 캠퍼밴 이야기
끝없는 초원엔 양들이 나보다 훨 자유롭게 풀을 뜯는다. 저렇게 팔자 좋은 동물이 있을까.
작은 마을을 지나면 어디선가 바다 같은 호수가 나타나고 곳곳에 벤치와 식탁이 마련되어 있다. 차를 세운다. 차 안에는 많은 것이 갖춰져 있다. 가스레인지, 냉장고, 식탁, 작은 수납장, 작은 화장실, 침대...
그리고 마트에서 장 봐둔 이런저런 먹거리까지.
날이 맑으면 나무 아래서 쉬고, 비가 오면 차 안에서 간단하게 컵라면을 끓여 먹는다. 과일과 커피 후식까지.
이 작은 집은 때로 텐트와 같이 낭만적이고 때로 럭셔리한 호텔 같기도 하다.
비가 오는 날! 사방이 창으로 되어 있고 거대한 자연은 그대로 배경이 되고, 빗소리가 우두두둑 날것으로 소리가 전해오면 거의 미친다.
4. 홀리데이파크 이야기
전국 어느 도시나 캠퍼밴이 잠자는 홀팍(H.P)이 깔려있다. 미리 예약을 하기도, 그냥 가서 머물기도 한다.
공동 부엌에서 밥을 해 먹고 설거지를 한다. 세탁실에서 동전을 넣고 세탁을 하면 된다. 대부분 홀팍은 샤워실이 공짜다. 너무도 간단한 시설에 나름 깨끗하게 되어있어 샤워하기가 편하다. 물이 따끈하게 나와 피로가 싹 가신다. 화장실도 깨끗하다. 물과 전기 공급이 되며 하수와 오물을 버릴 수 있다.
주변 사람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 잘 때는 커튼을 친다. 서로 만나면 웃어준다. 누구도 우리를, 우리도 누구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 살면서 언제 이렇게 아무의 간섭과 눈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 편하고 자유롭다.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언제 자든, 언제 일어나든, 우리끼리 무슨 얘기를 하든....
5. 뉴질랜드의 도로와 운전
남섬에서는 직선도로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다 구불거리는데 차들은 씽씽 달린다. 길에 익숙한 사람들이리라. 정해진 속도는 어디나 100km. 그 이상 달리는 차는 없는 것 같다.
길은 대도시 아닌 다음엔 그냥 1차선, 왕복 2차선으로 끝이다. 중앙선은 노란선이 아니다. 흰색 점선이다. 달리고 싶으면 달리고, 추월하고 싶으면 추월하고. 그러나 안전하게 100은 넘지 마시오. 또한 도시로 진입할 때는 무조건 50이다. 쌩쌩 달리던 트럭도 그 속도는 꼭 지킨다는 것. 어디서든 추월할 수가 있으며, 추월하는 차는 절대 위험하게 모험하며 추월하지 않는다. 앞이 확실히 보이는 곳에서 하며, 저 멀리서라도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보이면 추월하지 않는다.
도로 주변의 풍경은 상상을 초월한 다양한 모습이다. 일부러 가꾼 것 같은 인상이 들 정도로 다 다르다. 1번 도로는 어떤 테마로, 2번 도로는 어떤 테마로..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정원을 가꾸듯 만들어진 풍경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광활하고 긴 도로를 어떻게 정비한 것인가. 끝없는 광야, 끝없는 숲, 끝없는 가로수, 끝없는 꽃, 끝없는 산, 끝없는 초원, 끝없는 사막, 끝없는 양들 구름들 파란 하늘, 화산 지형의 도로,.. 풍경이 이곳과 저곳이 다르고 새롭고 또 새롭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림 같은 풍경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운전하는 것 자체도 신비한 경험이고 그것이 곧 여행이다. 신비롭다.
캠퍼밴이 좀 큰 차라 운전하는 것이 부담이 조금 있으나 과속하지 않고 뒤차 신경 쓰지만 않는다면, 운전할 맛 나는 나라이다.
6. 우리의 식탁
저녁엔 밥을 한다. 김치와 스테이크와 와인이 주종이다. 남은 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김치와 계란과 김과 함께 먹는다. 점심은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한다. 후식은 차 안의 식탁에서 과일로 한다. 우리의 식량 저장고에는 많은 간식들이 있다. 과자와 라면과 포도주와 봉지 커피와 콘프레이크와 군것질거리 등등, 냉장고에는 김치와 요플레와 과일과 야채와 물과 우유와 계란과 된장류 등등... 넉넉하다. 잘 먹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밥심이 없으면 이 여행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었다.....
7. 하루 종일 하는 일
일어나면 씻고 아침 준비를 한다. 맛있게 먹고 차를 깨끗이 정리한다. 옷 정리, 이불 정리, 짐정리.. 차가 달릴 때 무엇인가 올려있거나 문이 열려있으면 다 쏟아지며 소리가 거칠어진다. 깨끗이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그래야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끓여마실 때 카페 같은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물도 채우고 파워사이트도 정리하고 출발.
달리는 차 안에서 경치 구경이 중요하다. 그리고 볼 곳에 도착, 보고 다시 차 타고, 걷고 보고.. 그리고 저녁에 홀팍에 도착. 저녁 준비, 맛있게 해 먹고,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이불 깔고 노트북 펴서 하루 정리, 그리고 핸드폰 만지작거리거나 책을 읽는 척하거나 얘기 나누고 그리고 잠. 이렇다.
차 안에서 뒹구는 게 참 좋다. 하루 12시 안에 잔 적이 없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8시밖에 안 됐으니 말이다.
8. 뉴질랜드에 없는 것
벌레. 그 광활한 자연의 세계, 산으로 둘러싼 나라에서 기어 다니는 벌레를 못 본다. 산에서도 호수에서도...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게 뉴질랜드에 대한 인상을 200%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트레킹 코스에서 다른 길, 샛길, 여러 개 붙여놓은 산악회 홍보 리본, 이런 게 없다. 얼마나 깨끗한지.
나쁜 사람. 이런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믿음. 신뢰. 이것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팁. 여행 다닐 때 신경 쓰이는 것인데 없어서 좋다.
셀프서비스. 주문하면 갖다 준다. 어이구 편해라.
간섭, 잔소리. 이건 내가 못 알아들어서일 수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눈짓도 주지 않는다.
9. 뉴질랜드의 호수
수도 없이 많다. 제일 큰 호수는 북섬에 있다. 타우포. 서울의 면적보다 크다 한다. 바다인 줄 안다. 매우 깨끗하고 빛난다. 호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이 늘 함께 있다. 많은 레저가 발달되어 있다. 다양한 놀이를 할 수가 있다. 요트, 카약, 수영, 식사, 가족들과의 시간들... 참 평화롭다. 이들은 살이 탈 염려는 안 하는 것 같다. 그냥 자유로움 자체이다.
이들의 삶은 어떻게 언제 주름이 지어질지는 모르나, 주름이 있을 때 있더라도 지금 자연과 함께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런 느낌이 그냥 이국인에게 확 다가온다.
나는 구경한다. 차 한 잔 마시기도 하고 그들을 바라본다.
10. 뉴질랜드의 산길. 트레킹 코스
우리나라만 국토의 70%가 산이어서 우리 강산이 아름다운 줄 알았고, 우리나라만 산악인이 많은 줄 알았다. 뉴질랜드는 곳곳이 산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화산, 만년설의 산, 빙하를 가지고 있는 산들이 있다. 곳곳에 트레킹길이 잘 닦여 있으며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이 트랙이 안전하게 닦여 있다.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그래서 하이, 헬로, 또는 눈인사를 나눈다. 산길 곳곳엔 피크닉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벤치가 있어 어디서나 쉴 수 있고 싸 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자연은 사람을 위해 많은 휴식의 자리를 준비하고 있으며, 사람은 그 자연을 잘 보존하고자 한다. 산에서 요상한 벌레나 지저분한 것을 볼 수가 없어 산이 더욱 좋고 트레킹이 신이 난다.
어느 산이든 같은 표정이나 풍경은 없다. 포인트에서 보이는 풍경마다 경탄이 나온다. 황홀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특히 험산이 아니라 걷는 것을 좋아하는 산악인은 뉴질랜드의 산이 딱이다. 일단 안전하고 깨끗하고 아름답다.
11. 뉴질랜드는 천국인가?
최소한 여행자에게는. 산을 좋아하는, 그러나 나이가 들어 본격적인 등산을 하기 부담스러운 내게는, 트래킹이 최고의 코스였다. 우리의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의 올레길처럼 아름답고, 거기다 이색적이고 깨끗하고 뭔가 남의 나라 땅인데도 안심이 되는.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에서 즐길 수 있는 많은 활동들이 있다. 요트 카약 수영,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의 물놀이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잘 닦여진 자전거길,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을 달리는 자전거, 렌트한 자전거가 좋아, 서울로 가면 중고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5년 전에 이민 오신 아저씨를 보다. 여행 동안 천국 같은 곳에서 사는 그 아저씨는 막 행복해 보이지도 찌들어 보이지도 않고, 무료한 얼굴이었다는 것!
아이 교육 때문에 이민 오셨다는데, 아이들은 매우 만족하고 좋아한다는데.....
12. 여행을 이야기하기
여행 전에 이런 여행을 기대한다.
“여행 중엔 그 나라에 푹 빠지게 되길. 돌아올 즈음엔 집이 또 그리워지길.” 여행이 재미없거나 집에 오기 싫어지는 여행은 아니길.
여행은 내려놓기 위함인데 우리는 20일 동안 캠퍼밴과 다니면서 집을 짊어지고 다닌 것 같은 부담도 가졌다. 좀 간편하게 다녀야 되는 거 아님?
그러나 우리의 여행을 낭만적이고 풍요롭고 완전 새로운 체험의 시간을 갖게 해 준 캠퍼밴, 헤어질 때 진짜 고맙고 아쉬워서 쓰다듬어주었다. 기억하려 곳곳을 다 찍어놓고 헤어졌다.
내가 여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러움을 주는 이야기가 되지 않길.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내가 어릴 때 아무도 여행이나 세계를 알려주지 않았다. '먹고살기에 바빴으니까'로 모든 걸 퉁 치게 된다.
젊은 날 누군가 넓은 세계를 이야기해 준 이가 있었다면 나의 삶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꿈꿀 수 있었을 것이다.
젊은이들, 젊은 엄마들, 여행을 계획했음 좋겠다.
먹고 입고 보이고 공부에 쓰는 돈을 아끼고 여행에 돈을 썼으면 좋겠다.
계획하라고 나는 여행을 이야기한다.
부러워하지 말기. 남의 인생이나 나보다 많은 나이 부러워할 것 없음.
나는 지금 나보다 젊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또한 나보다 가진 것이 많고 안정된 노년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의 나를 살 뿐이다.
2015.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