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약 30km를 달린 것 같다. 이 길을 덜컹 거리며 왕복을 할 때는 그릇 다 깨지는 줄 알았다. 바퀴 펑크 날까 봐 완전 쫄다.
홀팍에서 본 안내책자에 이 트레킹 길 소개가 되어 있었다. 아름답고 다양한 경관을 볼 수 있고 산악인에게 좋은 코스일 거라는 소개, 가는 길이 이리 정신없는 비포장이라는 내용은 없었는데...
그러나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안내문이었다. 안내문이 이리 믿음을 주는 것은 또 뭔가.
가는 길에 펼쳐진 산들이 티베트의 산들 같다. 하늘은 티베트의 하늘같이 파랗다.
푸른 초장에 풀 뜯는 양들도 평화롭다. 아무리 많이 봐도 지겹지 않다. 얘네들이 안 보이면 궁금하고 보이면 또 반갑다.
비포장 도로가 계속 이어질 때, 괜히 왔나 하며 앞뒤를 봐도 다른 차들은 보이지도 않고 어쩌다 한 대 지나갈 뿐, 우리만 뻥 뚫린 길을 질주한다.
그 산에 가면 우리 말고 누가 또 있을까? 맘이 좀 불안한데 주차장이라는 곳에 도착하니 차가 몇 대 보인다. 이 나라는 그렇게 잘 뚫어놓은 도로에는 차가 잘 보이지 않다가 주차장에 가보면 차가 주차되어 있으며 산에 오르면 사람들이 보인다. 인구 밀도 차 밀도 낮고 땅 넓다는 얘기일 게다.
차를 세워놓고 오르는데 들어서는 입구부터 바람이 심상찮다. 머리카락 마구 휘날리며 옷을 부여잡게 하는 바람이, 나를 붙들고 억세게 나를 흔든다. 가지 말라는 신호인가....
빙하물이 계곡으로 강물로 힘차게 흘러내리고 있고 바람은 불어대고 저쪽 하늘은 짙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것 같더니 여기까지 빗방울이 날아오고 있다. 그 강물 위로 다리가 놓여있다. 건너가야 하는데 그 다리뿐 아니라 내 다리도 흔들리며 무섭다. 아, 정말 덜컹거리며 애써 온 길을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그러나 다리를 간신히 건너고 나니 거짓말같이 아득한 산길, 호젓한 산길이 시작된다. 저기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트레킹 코스처럼, 역시나 배반하지 않고 길이 잘 닦여있다. 깨끗한 길 위 저기 사람이 내려온다. 몇 사람이 나타나 올라간다. 이제 안심이며, 이제 느긋해지며 마음이 다시 행복해지다.
올라가는 길이 밀림 같으면서도 예쁘다.
빙하! 중간중간 멀리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엄청난 빙하가 떡하니 나타난다.
노란 꽃 뭐냐 그 꽃 이름이 민들레 같은 작은 노란 꽃이 고원을 덮고 있고 저 위에는 쏟아질 듯 빙하가, 그리고 주변 산 곳곳에는 굵고 가느다란 폭포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다.
와.... 입을 다물 수 없다. 사진에 담을 수 없다. 사방을 둘러싼 풍경은 이 세상이 아니라고 봐.
한참을 넋 놓고 머물다. 보고 또 보고. 찍고 또 찍고.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고....
내려오는 길은 나무도 길도 더 정겹고 아쉽다. 여기 언제 또 올 수 있으려나, 다시 꼭 오고 싶은데, 누군가에게도 보여주고 싶은데.....
하산길 양 이야기
가슴 벅차하며 내려오다 어린양 두 마리를 보다.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얘네들은 사람의 기척이 있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면 갑자기 죽은 척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조금 시간 지나면 능청스럽게 걸어간다. 그런데 이 어린양이 가만있는 척하더니 갑자기 '음메'를 부르는 거다. 그 순간 그 엄마인지 아빠인지가 나타났다. 순식간이다. 얘네들이 엄마한테 막 달려간다. 그리고는 엄마 다리 밑으로 기어들어가 얼굴을 처박고, 엉덩이를 내쪽으로 내밀고 엉덩이를 부르르르 떠는 것이다. "저 사람 때문에 무서워서 혼났다"는 식으로, "엄마 나 너무 무서웠어" 하는 식으로. 그러더니 엄마 양이 "괜찮아, 엄마가 혼내줄게" 하는 식으로 나를 요렇게 노려본다. 정작 나는 길 한가운데서 그러고 있는 양 세 마리가 무서워서, 나도 저 뒤쪽에서 사진 찍으며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그를 막 불렀다. 그러니까 요놈의 양들이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지 유유히 저쪽으로 사라진다. 정말 나를 놀래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