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년 전 연애 초기 때 그 당시 여자친구 ( 지금의 아내 )와 한국을 방문했었을 때, 한국에서 아내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또한 일본인이었으며 한국인 남자하고 같이 지냈지만 결혼식을 아직 올리지 않은 상태였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20살 때 공부를 할 때에 같이 공부했었던 친구라고 했었다.
아내와 그 친구는 한국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다른 친구들하고 약간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을 가깝게 묶어 주었다.
사는 곳이 달랐고, 우리들이 한국에 가는 것이 많아봐야 1년에 1번 또는 2-3년에 1번 가는 거였다. 거기에다가 한국에 갔다고 하더라도 매번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각자 바쁜 삶을 살고 있었기에 매번 맞춰서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에 오면 가족들도 만나야 하고, 그동안 인터넷에서 봤었던 장소도 가봐야 하고 등등 한국에서 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었기에 우선순위로 만나야 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나고, 아내의 일본인 친구하고 그때 만났었던 남자친구하고 결혼식을 올렸다는 말을 들었다.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또 몇 년이 지난 후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시기에는 우리들도 아기를 막 벗어나서 유아로 들어가는 자식이 있었기에 잘 됐다는 소식을 전달했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오전에 일하고 있는 도중에 아내한테 사진을 전송받았다. 아내가 아이의 사진을 찍어서 자주 보내줬기에 그 사진 또한 오늘의 아이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사진이 아니었고, 어떤 대화의 캡쳐본이었다.
대화는 영어로 되어 있었으며 ' She`s gone '이라는 단어를 봤다. 내용으로 보면 그녀는 갔다는 뜻이지만, 이런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단어도 아니고 설마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의 친구가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연락을 해준 것이다. 친구의 남편은 필자의 아내에게 친구가 사망했고 장례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내가 그 친구와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서 연락을 줬다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듣는데 가슴이 철렁했다. 뉴스에서 수많은 사고, 사건을 통해서 사망소식을 많이 듣지만, 그때 느끼는 감정이라는 달랐다.
필자는 와이프한테 곧바로 전화를 하였고 뭐냐고 물어봤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 이해한 거 일수도 있으니깐. 캡쳐본에 있는 내용을 보면 어떤 상황인지 인지를 할 수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 자살했데 " 그러면서 아내의 흐느낌이 전화 넘어 들려왔다. 그 말을 듣고 필자도 울컥해서 아아 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을 꺼내면 울음을 참아야 하는 소리가 같이 나올 거 기 때문이었다.
자살로 돌아가신 분에게 그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그 누가 알겠는가
아내는 흐느끼면서 " 9개월 아기도 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라고 꺼냈다.
이 말이 필자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하며,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명복을 잘 빌어주자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동병상련이라는 마음 때문에 감정 이입이 더 된 것일까? 허탈함과 슬픔은 한동안 필자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며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가정을 이뤘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그 친구에게는 외국이다. 한국에 살면서 포근한 마음을 받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그것을 지금까지 잘 참아오다가 무엇 때문에 그것을 무너트린 것일까 라는 생각
9개월 된 아기를 남겨두고 그렇게까지 갔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주저했었을까? 아마도 주위사람에게 말하지 못하고 본인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일까?
그분이 느꼈을 절망, 좌절, 아픔을 감히 누가 이해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계속 떠 올랐다.
아내에게 보낸 문자에서는 남편의 자책감이 느껴졌다. 그건 누가 와서 막을 수도 없고, 평생 그 자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기억에서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문자에서 "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So sorry "라는 단어를 두고 아내는 친구 남편에게 본인을 자책하지 말라고 했지만, 필자는 그 문자만 계속 보고 있었다.
자살하신 이유가 우울증이라고 하셨다.
아내는 한동안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있었다. 아직 죽음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을 엄마에게 같이 놀 자도 칭얼 대는 것을 " 엄마가 지금 친구한테 인사하고 싶어 하니깐 아빠하고 놀자 "라고 돌려세웠다.
아이가 " 엄마 친구가 어디 가는데 인사를 해? "라고 물어왔고
" 엄마 친구가 쉬고 싶어서 아주 멀리 가신대 "
" 어디로? "
라는 질문을 받는데 울컥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 하늘나라로 가신대 "
" 왜? 비행기 타러? "
결국 아이를 안아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아내도 부엌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중에 9개월 된 아기가 크고 나면 뭐라고 해야 하고, 그 아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울증은 사람마다 나타나는 것이 다르지만, 삶을 갉아먹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호주에서는 우울증을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치료를 통해서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과 일본은 우울증을 개인의 치부 또는 단순한 감정의 기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많다. 그렇기에 우울증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대하지도 않는다.
우울한 것 같다고 하면 " 네가 요새 안 바빠서 그런가 보구나? " " 바쁘면 우울할 틈도 없다 " " 내 생황 봐라.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잖아 " 등등 이렇게 넘어가곤 한다.
우울한 사람에게, 내가 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니 나를 보고 힘내라 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본인의 불행이 치유 또는 없어지지 않는다.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의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1위다.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하루에 40명 정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보다는 낮지만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일본은 인구 10만 명당 19.1명이다. 일본 전체 인구가 1억 명이 넘어가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숫자는 몇백 명을 넘어가게 된다.
2023년도 기준 한국에서 사망하는 원인 중에서 4위가 자살이다. 1위가 암, 당뇨 등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사망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스스로 생일 마감하는 자살이 1위다.
특히 10-20대의 사망원인 중 1위가 자살이다.
우울증에서 나타내는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체중감소, 식욕저하, 수면부족,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빈도 상승, 의욕저하 등등 여라가 지 증상이 나타난다.
치료법에는 약물을 통한 치료 또는 심리상담을 통한 치료가 있다. 뭘 하던지 치료는 받아야 한다.
필자 또한 오랜 해외생황을 통해서 우울증을 겪어 본 적도 있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생활유지에 대한 금전적인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 등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되어서, 어느샌가 방 청소도 안 하고 그냥 그대로 살고 있었으며,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이 저하되었다. 그 시기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 너 괜찮아? "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었다. 그렇게 스스로 이상하다고 느껴지고 나서, 심리상담을 통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요새는 국가에서도 우울증을 집중 치료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살고 싶으면 구조요청을 해야 한다. 우울증은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닌 질병임으로, 병원에 가서 의사와 함께 치료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싶어서 병에 걸리는 것인가? 의도하지 않았고, 예상하지도 않았고 언제 다가올지도 모르는 것이 질병이다.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우울증 치료라고 치면 여러 개의 병원이 나온다. 그만큼 우울증 치료가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아내의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커서, 울분을 토하듯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울시 자살 예방 센터
서울시자살예방센터- 마음이음1080 (suicide.or.kr)
비록 아내의 친구를 한 번밖에 못 만난 사이지만, 그 어떠한 말로도 위로해줄 수 없을 것 같다. 새로 떠난 곳에서는 부디 편안하게 지내기 실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