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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재택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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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사임당 Oct 05. 2024

잔소리가 뭐에요?(재택 백수 20)

잔소리는 상대가 중요합니다.

막 씻고 나온 참이다.



빨리 씻으면 그 시간만큼 가로 본능을 빨리 실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알고 있음에도 게으름과 가로본능은 서로 고집이 세어 이성과, 합리적 생각과, 건강 생각까지 하며 결정되는 하루 마지막 고뇌이자 일과 되겠다.


두런두런.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임에도 식탁에선 두 남녀가 잔을 기울이고 있다.

나하고는 일면식 일면식이 쌓여 많이 아는 얼굴이지만 모른척한다. 자고로 술 먹고 있는 사람 건드려서 얻을 건 술잔밖에 없다.

하, 그런데 마지막 관문의 마지막 관문은 냉장고에 가서 로션을 바르는 건데…. 나는 투명 인간이다. 나는 투명 인간이다. 주문을 걸며 씩씩하게 목적지로.


남편: 여보(아 들켰다)

나: 왜?

큰딸: 엄마 잔소리가 뭐야?

나: 잔소리는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말이 모두 잔소리지.

남편: 으…? 아니, 지금 그 얘기 하는 게 아니잖아.

나: 아빠가 얼마 전에 안구 건조 때문에 인공눈물을 샀거든? 왜 그렇게? 스마트폰을 많이 봐서 그런 거잖아. 그런데 스마트폰 좀 줄이라고 하면 아빠가 뭐라는 줄 알아? 잔소리한다고 해! 그리고 술떡을 말아 먹고 왔으면 집에까지 2차 3차 4차 맥줏집 만들지 말라 했잖아. 그런데 알았다고 말만 하고 안 들어. 지금도 봐, 대리기사까지 해주고 모셔 왔더니 이러고 술을 먹잖아?

남편: 지금 애한테 고입과 대입, 인생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하는 중인데, 당신이!

큰딸: 아빠가 엄마말을 잔소리 만드네!

나: 짝짝짝. 역시 시후가 이해력이 빨라!!! 잔소리는 듣는 사람이 만드는 거다~ 워런 버핏과 식사를 해도 그분이 해주는 소리를 잔소리 만드는 건 듣는 사람의 능력이란 말씀.

남편: 끙. 그래그래, 작가해라. 노작가는 글러 먹은 거 같고 박 작가 해라, 박 작가.

나: 나는 노작가인 적이 없었고 그런 이름할 생각이 없고 내 이름은 노 잡가다! 노 잡가!



남편이 재택 백수 업무를 열심히 하느라고 안구 건조가 심해졌다. 모름지기 재택 백수라면 스마트기기를 상시 몸착(몸에 착 붙어있어야)해야 하는 까닭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근데 선배인 내 말은 듣는 척도 안 하고 잔소리 삼더니 저러다 돋보기 쓸 거다. 암.


내 말 안 들어서 돋보기 쓰는 게 좋은 건지 안 쓰고 내 말이 우스운 말이 되는 게 좋은 건지 모르겠다. 뭔지 모르지만 다 손해 보는 느낌이니 말이다. 하여튼 백수 생활이 슬 마무리 되어가는 마당에 아무 얘기로 한 회차를 뽑아본다.





열달 닷새 엿날(10월05일 토요일)


-오늘의 토박이말-


*개울*

골짜기나 들에 흐르는 물길



재택백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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