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 진정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얼마 전, 와이프와 함께 친구 내외와 저녁을 먹었는데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제수씨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오빠, 오빠는 언니가 어느 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 케이크를 사 왔다고 말하면, 뭐라고 할 거예요?"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기분 전환 하고 싶어서 사 왔으니깐 잘했다고 해줘야지."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어머 언니. 어떻게 같이 살아요?"
라며 와이프를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더군요. 그러자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고, 저도 덩달아 웃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뭘 잘 못했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바탕 폭소가 끝나갈 무렵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럼 뭐라고 했어야 하는 거야?"
그러자 재수 씨는 곧바로 친구 녀석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친구 녀석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왜 기분이 안 좋았던 거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엇이 잘못된 건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모범답안을 보면 이해가 쉬운데 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걸까요? 꽤 오래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읽을 당시에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저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네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 녀석은 과연 제수씨와 절대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라는 참으로 지질한 궁금증이 생긴 것이죠. 그래서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야, 넌 진짜 어떻게 그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아냐?"
"야 인마, 여자들은 감정의 동물이야. 아직도 그걸 모르냐. 그냥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반응을 보이면 게임 끝이야."
"그럼 너도 공감하는 척만 하는 거란 말이야?"
"여자들을 어떻게 다 이해하냐? 그냥 그러는 척해주면 사는 게 편해지니깐 그러는 거지."
놀라웠습니다. 티 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보이는 친구 녀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공감에 대한 기존의 저의 상식이 무너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감이란 쌍방이 동일한 감정을 느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감을 원하는 사람이 상대가 자신과 공감하고 있다는 징조만 확인한다면 그 자체로서 공감이 일어났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물론 일방적인 공감이긴 합니다. 그래도 선의의 거짓말과 같이 좋은 결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리 나쁘게 볼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상대에 관해 공감을 하지 못하더라도 약간의 훈련을 통해서 상대에게 공감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을 대할 때 여러모로 분위기도 좋아지겠네요.
우선 와이프에게 공감을 선물하는 발칙한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와이프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와 진짜?" 라며 리액션을 한 것이죠. 그러자 와이프가 오히려 화를 내더군요. 애쓰지 말고 하던 대로 살으라는 뼈 있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한 가지 효과 좋은 방법은 찾아낸 것 같습니다. 바로 '듣는 것'인데요.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리액션을 뺀 이후 와이프의 눈을 바라보며 와이프가 하는 말을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느덧 와이프는 편안해하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꺠달았죠.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특별한 어떤 걸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상대의 눈을 보며 그냥 듣기만 하는 것만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선물해 보려 합니다.